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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Dec 19. 2022

지나간 일을 흘려 보내는 기술

지나간 순간을 붙잡지 않아요

가스라이팅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가스라이팅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상대방의 감정과 사고 방식을 흩뜨리고 자존감을 떨어뜨려서 자기 입맛대로 상대방을 조종하는 것을 말한다.


수치와 죄의식에 찌들어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스스로 자기주장을 펼치거나 남들에게 한계를 정해줄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은 유독 다른 사람의 영향력에 휘둘리기가 쉽다. (p.63)
크리스텔 프티콜랭, <굿바이 심리 조종자>, 2012, (주)부키


심리 조종자가 별개의 인격체로 나의 밖에만 있을까? 심리 조종자가 내면화되어서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소리는 내고, 인간의 삶의 열정과 자유로움을 빼앗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심리 조종자가 희생자를 선택하고 유혹하고 휘두르는 방법을 다양하게 묘사한다. 내게는 어떤 심리 조종자가 있고, 어떤 심리 조종자에게 내 삶을 휘둘리고 있을까? 가해자인 심리 조종자는 자신의 이익을 휘해서 피해자를 고른다. 자기 삶에 에너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밝고 순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골라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한다. 위협과 협박, 또는 회유와 유혹, 또는 순진무구한 가장이나 불쌍해 보이게 하는 수법을 쓸지도 모른다. 다양한 수법을 통하여 결국은 심리 조종자가 힘들이지 않고도 편히 살 수 있도록 피해자는 수고해야 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인정을 받기는커녕 존중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


자신의 욕구를 완전히 책임지기로 한 사람은 세상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으며 놓아야 할 것은 명철한 의식 상태에서 놓아버릴 줄 안다. 이런 사람은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분출되기 때문에 다시 의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힘과 자유를 느낀다. 그렇게 참으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려면 자기 자신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욕구를 존중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심리 조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졸병 노릇은 당장 그만두자! (p.157)
크리스텔 프티콜랭, <굿바이 심리 조종자>, 2012, (주)부키

Photo by Noah Buscher on Unsplash

그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심리 조종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순수한 베풂일까? 이것 참, 헷갈리고 어려운 일이다. 혹시 나도 어떤 부분에서는 심리조종자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심리조종은 단순하게 한 사건의 일면만 두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알까? 그가 심리 조종자인지, 아니지? 직관에 의하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심리 조종을 당하는 사람은 직관적으로 그 이상한 관계가 시작될 때 안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조종이든 아니든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도 못하고 희생당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상태라면 그 관계는 되돌아볼 일이다.


심리 조종에 대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와 맞지 않던 직장 생활이었다. 남 보기 좋은 직장이더라도 내게는 최악인 경우가 있고, 그 직장이 나와 정말 맞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지만, 이런 저런 계산을 하느라 직장을 오랫동안 그만둘 수가 없었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면서도 퇴직을 결정하지 못한 것은 이 직장을 그만두면 이만한 직장을 구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 두려움이 심리 조종을 당하는 하나의 길을 내어줄 수 있다. 그 남 보기 좋은 안정적인 직장생활에서 나는 삶의 활기를 빼앗기고 쉽게 무력감을 느꼈다. 내 부모,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이 내게 그 직장을 강요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음에도 나는 휘둘렸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휘둘리는지도 모르면서도 그 직장에 나갔고, 그 직장에 머물러야 할 거짓 이유를 지어내느라 애써야했다. 내 내면의 심리조종자에게 끌려 다닌 꼴이었다.


성숙한 사람, 한껏 무르익은 사람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화해한 사람이다. 과거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대면해서 결국은 극복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한편 미성숙한 인간은 잘난 체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 아이를 돌보지도 않는다.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기 위해 필요한 거리 감각이 없기 때문이. 그래서 그의 내면 아이는 태만하고 무섭고 슬프다. 그 아이 때문에 그의 인격은 온전히 계발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그는 의미 없는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다. (p.106)
크리스텔 프티콜랭, <굿바이 심리 조종자>, 2012, (주)부키


Photo by Adrien Milcent on Unsplash

인간관계에서도 심리 조종을 당한다면 알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 폭력이 명시적이지 않더라도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이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면, 그리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더라도, 당신의 삶이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면, 그 관계를 돌아볼 일이다. 재미 있게도 심리 조종자는 피해자가 허용하는 만큼만 괴롭힌다고 한다. 육체적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피해자에게는 욕만 하면서 괴롭히는 남편의 사례가 있다. 그리고 피해자가 관계를 끊으려고 하면 귀신처럼 알고는 갑자기 잘해주거나, 피해자가 그동안 바라왔던 것을 순식간에 해 준다. 그러다가 피해자가 다시 자신의 손아귀에 돌아온 것 같으면 다시 제멋대로다. 아내가 떠나자 알코올중독을 벗어나고 아내가 다시 돌아오자마자 술을 입에 대는 남편의 사례도 흥미롭다.


이런 형태(책임 전가)의 죄의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p.243)
크리스텔 프티콜랭, <굿바이 심리 조종자>, 2012, (주)부키


내가 이 책을 왜 읽기 시작했을까? 이 책의 저자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 바로 <굿바이 심리 조종자>를 읽으며, 뭔가 명쾌한 해답을 기대했다. 내 마음이 뭔가 혼탁한 느낌이 있는데, 이 마음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궁금했고, 뭔가 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에 대한 해답을 즉시 얻기를 내밀히 기대했다. 그런데 사실 내게는 현재 나를 심리 조종하는 명확한 사람도 없고, 내가 누구를 이용해 먹으려는 못된 생각을 먹고 있지도 않다. 그럼 지금 나의 이 불투명한 마음은 어디서 기인한 것이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 나에게 심리 조종자는 내면에 각인된 폭력적이고 위압적이고 마음에 죄책감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의 어떤 상황이 반영된 못된 실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면의 검은 심리 조종자 때문에 내 마음 속의 어린 아이는 마음 속 차갑고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상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을 할 수 있을까? 그 내면 아이를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착한 어린 내면 아이가 마음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데, 그 아이를 어떻게 구해줄 수 있을까? 이제 그것을 떠나 보낼 의식이 필요하다. 벌써 지나간 일이고, 그때는 지났다. 지금의 나는 홀로 설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이제 내 자리를 찾고 내 몫을 하고 내가 지금의 모습에 맞게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삶을 사는 것이 내면의 심리 조종자를 쫓아내는 방법이다.


스톡홀름 신드롬이 심하게 나타나는 사람에게는 아예 영속적으로 자리를 잡아 모든 상대에게 자신을 맞춰주는 자기조종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런 경우에 피해자는 다른 사람의 요구나 압박이 없어도 거의 영구적인 지배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p.171)
크리스텔 프티콜랭, <굿바이 심리 조종자>, 2012, (주)부키


심리조종을 당하고 있다면 빨리 벗어나라. 그것을 이후에 보상하려고 할 것 없다. 끝낼 관계는 청산하라. 본전도 못건져서 속상하더라도, 심지어 준 것을 잃더라도 더 잃지 말고 거기서 멈추어라.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지 말아라. 존중이 없는 사랑이라면 거부하라. 사랑 받는 것 보다 존중 받는 것이 중요하고, 당신은 존중도 없는 사랑 따위는 받지 않고도 홀로 설 수 있는 성인인 것을 잊지 말라. 마음 속 아이는 어리지만 지금의 당신은 그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 지금의 시간은 차후에 어떤 것으로도 만회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미 지나간 순간의 일을 지금 만회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지난 일이다. 흘려 보내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은 마음에서 흘려 보냄으로 내면의 감정 조종자가 나쁜 생각을 곱씹지 못하도록 하기를....


* 표지 사진 출처 : Photo by Chauhan Moni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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