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건강을 위한 디톡스
우리도 야곱처럼 씨름을 하며 산다. 누구는 피부 알레르기, 천식, 디스크, 비염, 비만, 가난, 기아, 전쟁으로 고생을 한다. 엄청난 부자에 건강과 미모와 명예를 가진 사람은 질투와 씨름하며 산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그 아름다움은 영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백설공주의 계모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이 나이에도 떠오를 줄은 몰랐다. 세계 2위의 부자는 세계 1위의 부자 때문에 마음 편히 잠 못 이룰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석학은 더 탁월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하루 종일 일에만 파묻혀 지내며 기쁨을 잊고 살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나처럼 소심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도 저마다의 씨름거리를 가지고 산다. 자잘한 씨름거리라도 그것은 본인에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야곱이 누구라고 천사와 씨름을 하여 이겼을까? 야곱은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사실 야곱은 사기꾼이다. 그것도 피붙이 형의 약점을 이용하여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한을 샀으니,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사기를 쳐서 장자의 권한을 받았다 치자. 그럼 잘 살아야 하는데, 야곱은 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도망하여 정착한 곳에서는 외삼촌이라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죽도록 수십 년간 일한다(물론 그 뒤로 사기와 꽤의 중간쯤 되는 수법으로 부를 일구기는 한다). 이렇게 사기로 점철된 인생을 산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해서 끝내 지지 않고, 야곱 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나는 아토피 피부염, 아토피 체질과 씨름하며 살고 있다. 인생의 어떤 길목마다 아토피가 심해져서 생활에 심각한 불편을 주고 있다. 아토피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한동안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을 챙기며 살지만, 곧이어 쉽게 아무거나 먹고 마시고 온갖 욕심을 부리며 살게 된다. 그러다가 아토피라는 녀석이 고개를 들고 내 인생에 영향력을 미칠 즈음에 되면 다시 디톡스를 한다. 지금, 아토피가 도져서 다시금 디톡스를 하며, 맛있고 달콤한 디저트나 기름진 음식, 그리고 무척 좋아하는 조합인 카페라테에 치즈케이크를 가까이할 수 없고, 밤에도 피부에 청량감이 없으니 잠을 설치면서 이것이 나의 씨름인 것을 다시금 인정하게 된다.
인생에 씨름거리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내게는 아토피라는 씨름의 대상이 있고, 아토피가 숨어 들어갈 때에는 질투나 욕심 등 또 다른 씨름거리가 등장해서 충분히 쉬고, 충분히 누릴 수 없게 한다. 아토피 덕분에 디톡스를 하느라, 틈을 내어 산책을 하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산책을 하지 못하다가 저녁 즈음이나 되어서 산책을 하러 나섰다. 저녁이 되었어도 여전히 텁텁하고 습하고 더운 데다가 바람 한 점 없었다. 자락길을 한 바퀴만 돌까 하다가 야곱을 떠올렸다. ‘그래, 이게 내 씨름이다. 사기꾼 야곱도 천사와 씨름을 하고 이스라엘 칭호를 얻었듯이, 특별할 것 없는 내게는 지금 이 무더위에 상한 피부와 동행하는 산책이 씨름이다.’ 그러고는 무한히 자락길을 돌았다. 두 바퀴 째는 바람이 한 점 불기 시작했고, 세 바퀴 째에는 비가 한두 방울 떨어졌다. 네 바퀴 째에는 시원한 바람에 빗방울이 떨어져 더위를 식혀 주었다. 그 이후에는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으로 무한히 자락길을 돌았다.
어떤 원인이든 필연이든 자기만의 씨름을 하고 있다면, 그 씨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인생이고, 계속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나 더위를 식히고, 의도치 않게 이스라엘이라는 대단한 칭호를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표지 사진: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by Alexander Louis Leioir(출처: 창세기 32장 22-32절(Genesis)-야곱의 씨름|작성자 월억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