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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Nov 22. 2023

배추 겉절이로 업그레이드 하기

먹고사는 일상

김치가 필요해지면 간단하게 무생채나 깍두기, 부추김치를 해 먹다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파김치를 담갔다. 블로그 몇 군데를 둘러보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담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가족들도 좋아하고, 파김치 담근 이야기가 브런치에서 만뷰가 넘으면서 김치 담그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파김치 담그는 실력은 그저 그런 초보이지만, 초보적인 느낌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거나 파김치에 얽힌 일상이야기를 소일거리로 읽으려는 독자들이 들어왔나 보다.


내 브런치의 토털 뷰가 2만 뷰가 조금 넘는데, 파김치 글 한 편으로 1만 뷰가 넘어가니 재미있으면서도 오히려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평소 소소하고 편안하게 글을 쓰던 사람이 갑자기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쓰려고 하니 손가락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아니 손가락은 자유자재로 잘 움직이는데 머리가 얼어붙어서 더 좋은 글을 쓰려다가 아무 글도 못쓰는 시간을 보냈다. 쓰고 싶은 욕망과 달리 머리는 글쓰기를 회피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독서 지인과 매일 글쓰기를 하기로 한 약속이 떠오르며, 글을 쓰려고 하면 갑자기 다른 할 일거리가 생각나거나 갑자기 차 한잔 마시고 싶어지는 식이었다.


집안일을 몇 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집안일, 특히 설거지는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많은 설거지를 마주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설거지를 효율적으로 할지 고심했다. 그릇별로 할까, 비누칠을 먼저 할까, 정리정돈을 하면서 할까, 그릇 한 점씩 씻어 올리는 방식이 좋을까? 아니면 기름기가 있는 그릇을 먼저 구분할까? 그런데 몇 년 동안 설거지를 하면서, 그런 고민을 하는 시간에, 그냥 물에 손을 담그고 그릇에 비누칠을 하는 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름이 많은 그릇이 나오면 그때그때 처리하고, 아주 깨끗해서 헹구기만 하면 되는 그릇은 손에 물을 묻히자마자 먼저 헹구어 내면 그만이다. 게다가 이제는 식기세척기를 주로 사용하니 설거지는 더 간편해졌다.


김치 담그기도 마찬가지다. 무김치나 부추김치만 담글 때에는 배추김치를 담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미리 절여 둘 필요도 없이 고춧가루와 설탕, 소금, 액젓으로 설설 무쳐 내기만 해도 되는 간단한 김치 이외의 것은 할 생각이 없었고, 고기를 굽다가 김치가 없는 것을 발견하면, 급히 냉장고에 든 대파나 양파를 길쭉하게 잘라서 부추김치 무치듯이 무쳐서 곁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파김치를 담그고 나니 절이는 과정이 필요한 김치가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물에 손을 담그면 설거지가 시작되고, 설거지가 시작되고 나면 기름기가 흥건한 접시라도 깨끗이 정돈이 되듯이 배추 겉절이도 일단 배추를 사서 씻기 시작하면 절반은 된 거다.



마트에서 색이 연한 알배기 배추를 한 통 샀다. 아직 큰 배추를 손질하기에는 큰 다라이가 없으니 알배추 한 통이 딱 좋다. 알배추 한 통을 대충 씻어서 길게 사등분하고 칼을 이용해서 손바닥 절반 크기로 쭉쭉 찢듯이 자른다. 그리고 천일염 한 움큼을 물 한 컵에 녹여서(다 안 녹아도 괜찮다. 소금이 간간이 보여도 절여진다), 손질한 배추에 뿌리고 가끔 뒤적여 준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배추에 숨이 죽으면(만져 보면 뻣뻣한 느낌이 없이 좀 부드러워져 있다) 물에 몇 번 헹구어 내고 양념을 무치면 배추 겉절이 완성이다. 이번 알배추는 너무 작아서 양을 좀 늘리려고 양파도 길게 한 개 자르고, 대파도 여러 줄기 잘라 넣었다. 양념은 부추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액젓, 설탕, 고춧가루, 다진 마늘, 소금 약간 넣어서 섞어 무치면 끝이다. 처음으로 만든 배추 겉절이도 성공이다. 액젓과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았더니 색이 빨갛지도 않고 짠맛도 덜하지만 시원하고 삼삼한 맛이 일품이다. 만약 액젓과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었다면 색깔이 고운 맛깔스러운 김치가 됐을 거다. 이번 첫 번째 김치는 양도 많지 않고 간도 세지 않았지만, 가족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밥상에 올릴 때마다 식탁이 풍성해지고, 김치볶음밥도 한 번은 해 먹었다(삼삼한 김치로 볶음밥을 할 때에는 설탕 한 스푼, 고춧가루 한 스푼만 추가하면 아주 맛있는 김치볶음밥이 된다).


다음 주에는 친정어머니와 김장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김장 김치를 거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배워 보아야겠다. 머릿속에서 콩닥콩닥 고민하던 것들을 직접 손을 걷어붙이고 해 보면 비로소 실재하는 것들로 변한다. 싱크대 앞에서 하던 고민이 깨끗한 그릇으로 변신하고, 늘 얻어먹던 김치에서, 내가 원하는 김치를 바로 담가 먹는 것으로 바뀐다. 글쓰기도 그렇다. 그냥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일단 타자를 치는 게 우선이다. 아무 말이나 몇 문장 적다 보면 어느 순간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만뷰는커녕 독자 몇 명이 간신히 눈길이나 주고 가면 어떤가. 그래도 글은 완성되었고, 또 다른 글로 먼저 독자에게 말을 걸 수도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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