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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Dec 07. 2023

떡 찌는 날

피부 건강을 위한 디톡스

요즘 집에서 음식 만들기에 재미를 붙였다. 디톡스를 하는 와중이라 기름진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으니, 집에서 좋은 식재료로 담백한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재미가 붙었다. 역시, 상황이 나빠도 좋은 것이 숨어 있는 법이다.


지난여름에 심하게 도진 아토피로 바깥 음식을 거의 끊다시피 했는데, 고기와 가공육은 전혀 그립지도 아쉽지도 않지만 밀가루 음식만큼은 정말 끊기가 힘들었다. 피부 상태가 심하게 악화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의사의 조언에 따라 고기와 카페인까지 끊어내는 결단을 내렸지만, 밀가루로 만든 달고 고소한 음식은 너무나 아쉬웠다. 그때 보이는 게 집에 남아도는 쌀이었다. 햅쌀이 나오면서 집에 있던 묵은쌀에 벌레가 꼬이기 시작했는데, ‘잘 됐다’ 싶어서 쌀가루로 빻아왔다.


쌀을 빻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난생처음 쌀가루를 만드는 거니 인터넷을 두루 검색해보고, 일부러 떡집이 바쁘지 않다는 오후 시간으로 갔는데 내가 자주 가던 떡집은 정기 휴무였고, 의외로 쌀가루를 내주는 떡집이 주변에 별로 없었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방앗간이나 들어가서 쌀가루를 빻아 오기는 했는데, 거뭇거뭇한 것이 섞여 있어서 먹기에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었다. 그 방앗간은 떡이 아니라 미숫가루나 들기름 같은 것을 주로 취급하는 집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물질이 섞인 것이다. 방앗간 할아버지는 검은 것은 쑥이니 먹어도 된다지만 하얀 쌀가루에 검정 점박이가 박힌 게 못마땅한 데다가 아무리 보아도 쑥향마저 없다. 속상하지만 배웠다 치고 다시 쌀을 담갔다. 쌀을 빻기 위해서는 한 나절 쌀을 불리고 물기를 제거한 다음 떡집에 가야 하니 공이 많이 든다. 다음날 다시 불린 쌀을 가지고 다른 ‘떡집’에 가서 쌀을 빻아 왔다. 역시 쌀은 방앗간보다는 ‘떡집’에서 빻는 것이 안전하다. 전혀 이물질이 보이지 않는 깨끗한 쌀가루가 반가웠다. 가져온 엄청난 양의 쌀가루를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원 없이 밀가루를 대체할만한 음식을 만들었다. 쌀가루로 김치부침개나 야채부침개를 해도 좋고 둥글넓적하게 절편 비슷한 떡을 만들거나 백설기까지 만들 수 있다. 떡집 아주머니가 손쉽게 해 먹을 만한 떡으로 추천해 준 것은 생가래떡인데 아직까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생가래떡은 쌀가루를 되직하게 반죽해서 길게 가래떡 모양을 만들고 숭덩숭덩 썰어서 떡국을 해 먹거나 익혀 먹으면 보드라운 가래떡의 맛이 난다고 한다. 사실 처음에 생가래떡을 시도했는데, 반죽이 너무 질어졌다. 쌀가루에 이미 수분이 상당히 함유된 상태라 물을 조금만 넣어도 금방 질떡해진다. 질펀한 반죽으로는 도저히 가래떡 모양을 낼 수 없으니, 프라이팬에 기름을 아주 조금 바르고 약불에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올려서 오랫동안 구웠다. 그랬더니 꽤 괜찮은 절편이 만들어졌다. 며칠 뒤에 쌀가루 식빵에도 도전했다. 밀가루를 즐기던 시절에 시판되는 빵대신 집에서 만든 빵이 몸에 좀 더 낫겠지 하는 마음에 사들였던 제빵기가 있다. 그 제빵기에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넣었다. 그리고 달걀과 소금, 물과 설탕 조금, 이스트를 듬뿍 넣고 돌렸더니 먹을만한 쌀빵이 만들어졌다. 설탕을 조금만 넣었으니 달지는 않지만 담백하고 달걀맛이 향기로운 쫄깃한 빵이 되었다. 쌀빵을 두어 번 만들어 먹고는 가장 최근에는 백설기를 했다. 그리고 백설기는 대성공이었다.


먼저 녹두를 한나절 불린다. 콩이나 팥을 넣어도 좋겠지만, 알이 작고 색도 푸른 녹두를 넣어 보았다. 냉동한 쌀가루도 녹두를 불릴 즈음에 꺼내서 실온에 둔다. 녹두가 다 붇고 나면 한소끔 삶거나, (잘 불은 녹두라면) 그냥 사용해도 좋다. 특별한 떡 도구가 없는 경우에는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인 다음에, 삼발이를 놓고 넉넉한 크기의 면포를 올린다. 그리고 면포 위에 녹두를 깔고(녹두에는 소금과 설탕으로 살짝 간을 하는 게 좋다) 그 위에 쌀가루를 올려 쪄 내면 된다. 쌀가루에는 설탕을 조금 섞어서 손으로 좀 치대다가 사용하는 게 좋다. 원래는 체에 두어 번 걸러내면 식감이 더 좋다지만 체까지 꺼내 사용하는 것은 번거로우니 그 과정은 생략하고 물주기를 하면서 좀 더 오래 치댔다. 물주기는 쌀가루에 물기를 적당히 추가하는 것인데, 물을 추가하고 대강 섞어서 손으로 쌀가루를 쥐었을 때 손에 쥔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면 물주기를 잘 된 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쌀가루를 면포에 올렸다면 먹기 좋게 칼집을 내주고 강불에 20분, 약불에 5분 정도 찌면 백설기 완성이다.


백설기를 앉혔다



백설기 만들기가 이렇게 쉬울 줄 몰랐다. 가장 쉽고 그럴듯하게 완성된 떡이 바로 백설기다. 어떤 날은 (바나나가 남아 돌아서) 바나나를 두어 개 섞어서 바나나설기를 찌기도 했다. 쌀가루에 물주기를 하는 과정에 물 대신 바나나 과육을 섞었는데, 이건 식감이 별로였다. 백설기의 포슬포슬한 식감이라기보다는 쑥버무리 같은 느낌으로 되어서 좀 실망했는데, 아이들 입맛에는 오히려 바나나설기가 더 맛있단다.


백설기를 앉히고 면포를 덮어, 20분은 강불에 찐다


햅쌀이 나오는 지금, 집에 묵은쌀이 있다면, 쌀가루를 내어서 음식을 몇 가지 해 먹다 보면 쌀이 훅 줄어든다. 그리고 밀가루가 아닌 쌀가루로 손쉽게 해 먹을 음식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쌀가루 김치 부침개는 촉촉하면서도 바삭한 맛이 일품이고, 집에서 바로 찐 떡은 뜨거울 때 먹어도, 한 김 식은 뒤에 쫀득하게 먹어도 제맛이다. 처음에 한의사의 말을 듣고 내 체질에 맞지 않다는 고기와 카페인, 그리고 밀가루 없이 살 생각을 하니 깜깜했는데, 의외로 그 세 가지 음식이 없어도 먹을 게 많기만 하다. 그리고 끝내 아쉽던 밀가루 없이 지내는 것에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어느 날은 이렇게 떡을 찌고 있지만, 또 어느 날은 디톡스를 위해 애써 준 지금의 나에게 감사할 지도 모를 일이다.



* 표지 사진: UnsplashCaitlyn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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