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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Dec 20. 2023

추운 날에는 쌀가루 김치부침개

먹고사는 일상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며칠 전만 해도 가벼운 바람막이 점퍼 하나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오리털 롱 패딩을 꺼내어 입고 장갑까지 끼어도 춥다. 베란다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어 둔 걸 깜빡했더니 세탁기마저 얼어붙어서 한참을 녹였다(세탁기에 FF에러가 떴을 때는 세탁기 배수관 어딘가가 얼어붙은 거다. 찜질팩을 뜨겁게 데워서 세탁기와 연결된 수전에 올려 두고, 베란다에 히터를 몇 시간 돌리고 나니 세탁기가 다시 작동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날에는 뜨거운 김치부침개가 좋다. 김치만 넉넉히 있다면 김치부침개 부치기는 어렵지 않다. 김치를 조금씩 해서 먹을 때에는 김치를 아끼려고 고춧가루도 좀 넣고 따로 간도 추가했지만, 양가에서 나누어 주신 김장김치가 김치냉장고에 터질 듯이 들어 있으니, 김치와 김치 양념을 넉넉히 넣고,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던 쌀가루를 섞었다. 그리고 물로 농도를 조절해 주면 김치부침개 반죽은 완성이다. 간이 부족하면 김치 국물을 더 추가하고, 간이 세면 쌀가루를 조금 더 넣어서 조절하면 된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쌀가루에 김치와 물을 섞으면 스르륵 녹으며 잘 풀어진다. 쌀가루로 떡이나 빵을 만들 때에는 미리 해동을 해야 하는데 김치부침개에는 쌀가루를 그냥 써도 되니 편하다.


공이 별로 들지 않은 것 치고, 김치부침개는 아주 맛있다(김장을 할 때, 한꺼번에 공을 쏟아부었으니 공이 안 든 것은 아니다). 공을 많이 들여도 김치부침개만큼 맛을 내기는 쉽지 않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넣으니 식감이 마치 수수부꾸미를 먹을 때처럼, 바삭함과 촉촉함이 공존한다. 김치부침개는 뜨거울 때 호호 불어가며 먹어도 제맛이지만, 식은 뒤에 쫄깃한 식감으로 먹어도 별미다.


김치 부침개를 할 때에는 김치 겉장처럼 질기고 맛과 볼품이 떨어지는 부분을 잘게 잘라 이용하거나 허드레 김치를 이용해도 된다. 쌀가루 반죽은 밀가루 반죽과 달리 점성이 별로 없어서 자꾸 뒤집거나 너무 세게 눌러가며 부치면 찢어져 버리니, 한쪽 면이 충분히 익었을 때 뒤집고 양쪽 겉면이 노릇해지면(센 불로 양면을 각각 2분씩 구우면 노릇해진다) 가장 약한 불로 줄이거나, 프라이팬 여열에 5분 정도 두면 바싹하고 노릇하게 구워진다(이건 집집마다 불 세기가 다르니, 처음 몇 번은 프라이팬 앞에 서서 확인하고, 익숙해지면 그 뒤에는 마음껏 방치해 두면 둘수록 맛있는 부침개가 된다).


센불로 2분 정도 굽고, 윗면이 익기 시작하면 뒤집는다



추운 겨울날, 간식으로도 반찬으로도 손색없는 쌀가루 김치부침개 레시피에 익숙해지니 든든하다. 늦은 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가족들에게 김치부침개 반 장을 꺼내어 주면, 부담스럽지 않은 야식이 된다.


비웠더니 풍성해지고 있다. 밀가루 음식을 즐기다가, 디톡스를 하면서 밀가루 음식을 멀리하느라, 쌀가루 김치부침개를 시도하게 되었고 오히려 더 다양한 맛을 즐기고 있다. 안 쓰는 물건을 치우면 집이 더 넓어지고, 정돈된 물건에서 쓸만한 물건이 보이는 것처럼, 음식도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멀리했더니 오히려 풍성한 맛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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