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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얼갈이 겉절이

by 소미소리

자연식물식 25일째다. 계획했던 자연식물식 30일이 다가오는데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더 많다. 그러니 30일이 되어도 자연식물식을 그냥 끝내지는 못할 것 같다. 자연식물식 식탁을 차리는 것도 쉽고 먹고 나면 속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니 자연식물식을 계속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말이다. 평일에는 자연스럽게 자연식물식을 하다가 주말이 되면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원하는 가족들 때문에 마음이 쓰인다. 자연식물식 첫 주말에는 나만 못 먹는 고기를 신나게 먹는 가족들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있었고,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의 음식이 별로 탐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가족들의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대형마트에 갔으니, 가족들이 카트에 먹거리를 담도록 두었다. 그랬더니 치킨 두 종류에 피칸 파이에 과자에 냉동피자에 아주 골고루 담았다. 하나하나 다 뜯어말리고 싶은 식료품이다. 매일 먹는 것도 아니니, 한두 번 다른 음식을 권유하다가 그냥 두었지만 저녁 식탁에 펼쳐놓고 먹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나도 같이 인스턴트를 먹던 때에는 별 느낌이 없더니, 이제는 가족들이 그렇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대형마트에도 건강한 음식이 얼마든지 있다. 처음에는 초록사과와 토마토, 멜론을 담고 감자와 얼갈이, 양상추, 파프리카를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치즈 몇 가지와 우유, 요구르트, 빵까지는 대형마트에 오면 의례히 사니까 넘어갔지만, 인스턴트 코너에서 고르는 음식은 영 못마땅하다. 역시나 친환경 매장이나 동네 마트와는 확연히 다른 식품을 훨씬 더 사게 된다. 못 말리는 가족들을 데리고는 역시나 대형마트에는 자주 안 가는 게 능사다. 어쩌면 가족들은 마트에 가면 늘 사던 음식을 골랐을 뿐인데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나의 기준이 바뀌어 버려서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그전이었다면 나도 분명히 초콜릿 몇 개를 카트에 넣었을 테다.



아침에는 복숭아를 먹었다. 아침에는 채소나 과일 중에 아무거나 먹는데 요즘에는 매일 복숭아다. 복숭아는 아침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여름 한 철 나오고 마는 과일이니까 곧 끝물이 올 거다. 점심에는 냉장고에 있는 채소와 나물 반찬을 모조리 꺼내고 맛살부추볶음만 새로 했다. 맛살이 두 줄 남았기에 가늘게 자르고 부추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같이 볶았다. 다 볶아졌을 때, 멸치액젓과 올리브유를 살짝 넣고 섞었다. 가족들 반찬은 추가로 냉동만두를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저녁에 가족들은 마트에서 사 온 치킨과 빵을 먹고, 나는 얼갈이 겉절이를 담그기 시작했다.



겉절이를 몇 번 담가보니 겉절이처럼 만들기 쉬운 음식도 별로 없다. 일단, 얼갈이 한 단을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굵은소금 두 큰 술을 넣고 절이는 동안 양파도 썰어 두고 양념도 만든다. 양념으로는 멸치액젓 8큰술, 고춧가루 4큰술, 설탕 3큰술, 식초 6큰술을 섞었다. 얼갈이를 몇 번 뒤적여 주면서 한 시간 정도 두면 잘 절여진다. 절여진 얼갈이에 양파와 양념을 섞으면 얼갈이 겉절이 완성이다. 오늘의 얼갈이 겉절이는 아무도 안 먹는다. 가족들은 인스턴트로 배를 불렸고, 나도 혼자 먹을 밥을 차리기가 싫어서, 감자를 삶았다. 찜통에 끓는 물을 넣고 감자 5개를 반으로 잘라서 30분 동안 쪘다. 삶은 감자와 멜론, 방울토마토로 저녁 식탁을 차렸다. 앞에서 가족들은 치킨을 먹는데,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났을 때, 속이 어떨지, 소화되는 느낌이 어떨지 아니까 손이 전혀 안 간다. 오히려 좋은 음식 놔두고 인스턴트를 신나게 먹는 가족들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치킨을 잔뜩 먹고 난 가족들은 과일에도 손을 안 댄다. 사실 인스턴트로 배를 채웠으면 후식으로 먹는 과일도 별로 좋을 게 없다. 차라리 내일 아침에 신선한 과일을 준비해 주는 게 낫다.



자연식물식 25일째인 오늘의 변화는 인스턴트 음식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데에 있다. 인스턴트 음식을 같이 먹고 싶어서 식욕을 억제하는 것이 어려웠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인스턴트를 먹는 가족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연식물식(자연에서 온 채소, 과일, 통곡물을 가능하면 변형을 가하지 않고 먹는 것)의 음식을 먹었을 때의 좋은 변화와 편안한 기분을 알고 있고, 이전에 인스턴트를 먹었을 때의 소화 안 되는 불편한 느낌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할 때에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자연식물식에서 벗어난 음식을 먹는 가족들을 볼 때에 고민스럽다. 내일은 얼갈이 겉절이로 비빔밥을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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