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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Feb 28. 2018

“왜?”를 배운 아이

미래를 보는 눈을 갖는 방법

두돌 즈음 부터 아이는 말할 수 있는 단어가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하는 말이 늘었고, 나는 아이가 새로운 단어를 하나씩 이야기 할 때마다 과격하게 칭찬한다. 그 칭찬은 일부러 아이에게 성취감을 돋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감정의 표현일 뿐이다. 정말 아이가 너무 기특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하는 나의 말투에는 아마도 감탄사가 절반은 넘지 않을 까 생각이 든다. 그가 하는 행동, 그가 하는 말은 내가 접하는 그 어떤 것보다 내게 감격스러움을 선사한다.


그런 아이가 요즘에는 갑자기 “왜?” 라는 말을 배웠는지, 아무때나 “왜?”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응” “네”를 배웠을때는 너무 예쁘고 기쁘기만 했는데, “왜?”를 시작하자 (물론 여전히 너무 예쁘고, 말 하나를 더 배운 그가 또한 자랑스럽지만,) 아이의 “왜?”라는 말에 에 대답을 해주는 일이 추가로 나의 일이 되었다. 


아이가 “왜?”가 무슨 말인지 알고서 이야기 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혹시나 아이가 정말 그 의미를 알고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사건일 터였다. 아이가 드디어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들 말고도 무언가 추상적인 개념, 이전에 있었던 사실 또는 원인 까닭 등에 대하여 궁금해지는 것이라는 말이고 이것은 아이의 어마어마한 발전임에 분명했다. 나는 아이의 “왜?”라는 질문에 같이 호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왜?"를 6번 하기


어떤 난제이든 “왜?” 라는 질문을 6번을 하면 풀리지 않는 일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질문에 함께 “왜 그럴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아이가 계속해서 어떤 대답에도 “왜?” 라며 대꾸하는 것에 그 질문을 인정하고 친절해질 필요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께 

“너는 왜 그렇게 말대꾸야?”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어른 말에 곧이 곧대로 행하지 않고, 자꾸

 “이럴 수도 있잖아요.”
 “그거 아닌데요.” 

등등의 이야기를 했었기에 들었던 꾸중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도 가끔은 아이가 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계속 하면 “뭐가 왜야. 빈아, 이제 궁금한거 다 풀렸잖아. 왜?는 궁금할때 하는거야. 알았지?” 하고 더 이상의 질문을 막기 위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아마 이 아이는 자라면서 수많은 말들을 더 배울 것이고 더 궁금해 지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엄마가 하는 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기도 할 것이고, 내가 하는말들이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에게 몇번의 질문을 허락할 수 있을까? 나는 그에게 얼만큼의 말대꾸를 허락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계속되는 “왜?” 라는 질문과 말대꾸를 허락하고, 아이의 질문에 함께 고민하는엄마가 될 수 있을까? (꼭 그렇게 해야지 다짐하는 중) 


미래를 보는 눈을 갖는 방법_ "왜?"를 잃지 않는 것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왜?” 라는 질문이 여섯번이 필요한데, 아마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아이가 사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더 합의와 과정을 중시할 것이며,  더 오래살고, 또 그로인해 직업을 몇번이나 바꿔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처음 이 말을 배운 지금 처럼 “왜?” 라는 질문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말대꾸 라는 함정에 빠져서 무조건 적인 복종만을 하기 보다는, 권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실험해볼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기를 응원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아이가 미래를 보는 눈을 갖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이가 이런 호기심을 잃지 않는 다면, 그는 분명히, 120세 시대에도 인생의 어느 시점이든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눈을 뜨고 새로운 삶과 새로운 직업을 갖는 일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성장할 미래에도 여전히 그의 생활을 밀접하게 통제할,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네가 “왜?” 라는 탐구 정신을 지금과 같이 간직할 수 있도록, 너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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