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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Feb 28. 2018

요리, 음식을 선물하는 것

마들렌과 미역국

나는 오늘 맛있는 미역국을 선물받아 먹었다.


꼭 식욕은 성욕과 더불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라는 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언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그러니까 나의 욕구를 넘치게 채운다는 것은 때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무언가를,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내게 선물해준 당신을, 늘 생각나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저 기본적인 욕구만 채워도 만족스러울지도 몰랐는데, 그대는 나의 욕구를 넘치게 채워주셨으니, 어찌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은 내게 주는 선물로 당신께서 손수 만드신 음식을 선택했고, 나는 당신이 내 곁에 부재하는 자리에서 그 선물을 개봉해서 끓이고 맛보았지만, 나는 그대가 옆에 있던 때와 비견될 정도로 한참동안 행복했다는 사실을 꼭 그대에게 전하고 싶다.


마들렌을 씹으면서 그때의 행복감을 추억하고,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자존감을 회복했던 프루스트와 같은 경험은 비단 그와 같은 위대한 작가가 아닌 범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언제고 찾아 올 수 있는 마법의 기회와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특별한 음식에 대한 기억은 어떤 다른 기이한 경험과 비교해서도 유독 오래 남을 수 있고, 그래서 음식을 선물한다는 것은 당신과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 줄 수 있는 소중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에서 그저 흘려 보내버릴 수많은 시간들을 내 기억속에 일일이 잡아 두기 위해서는 설렘, 떨림 흥분 아픔 등의 특별한 감정이 수반되는 경험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와 함께 여행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새로움으로 인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흥분을 전해 주고, 여행지에서 우리가 함께 느낀 그 흥분은 그 경험을 함께 공유한 우리를 더 끈끈하게 묶어줄테니 말이다.


하지만 여행도 그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비추어 볼때, 만약 우리가 속한 배경을 쉽게 바꾸기에 여의치 못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특별한 음식을 통해, 늘 생활이 이루어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소중한 추억들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대가 선물해준 요리,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나는 아마 한참의 시간이, 심지어 영겁처럼 흐른다고 해도,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으면서 행복한 한때를 추억했던 것처럼, 나는 당신이 내게 선물하신 그 요리와 비슷한 종류의 요리를 먹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추억하겠지.

“그때 그 맛은 여느 평범한 맛과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어. 나는 그때 너무 행복했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으니까. 그리고 그건 정말로 내가 그때까지 맛본 것 중에서 최고였지. 마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올 것만 같았다니까. 일주일을 내리 그 음식으로 상을 차려서 밥을 먹는다고 해도 질릴 것 같지 않았어.”

라고.  


몇년 전에 내가 알았던 친구 중에도 가끔 음식을 선물하던 친구가 있었다. 서울 요지와 전국의 주요한 곳에 건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던 어머니와 소위 사회 지도층 이라고 말하기에 그리 어색하지는 않은 아버지 밑에서 여유있는 분위기에서 자라서,  소위 ‘공주’라고 쉽게 분류해 버릴만한 가능성이 높은 배경을 지니고 있던 그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뭐랄까, 굉장히 획기적인 아이였다. 요즘 디즈니 어린이 채널에서 방송하는 리틀프린세스 소피아의 주인공인 소피아와 같은 친구라고 하면 적절할까?  내가 알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에서 오는 정겨움을 알고 있던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그 친구와 이야기 할때면 나는 늘 마음이 편해졌다. 그 친구는 옆에 있는 친구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녀가 나를 처음으로 그녀의 집에 초대했을 때를 기억한다. 그녀는 같이 고기를 구워서 먹자고 했다. 친정 엄마가 고기를 가져왔는데 조금 많다면서 같이 먹자고. 본래 나는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또는 우리 집에 누구를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알게 된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게 자신의 집에 초대해준 것이 기뻤다. 집에 초대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주 가깝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가까워 지고 싶다는 뜻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날 그녀의 집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앞으로 이 친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가까워 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에 아주 많은 부분은 그녀와 함께 먹은 직접 구운 고기에 있었던 것 같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고작 먹는거 하나에, 라는 생각에 좀 우습기도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배달 시켜서, 사서 먹는 음식보다 그렇게 집에서 직접 구워서 그녀와 같이 먹는 그 고기가 우리의 관계를 진전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우리는 자주 만나면서 주로는 그냥 밖에서 음식을 사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 당시 최고의 관심사였던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꿈과 미래에 대해서 그려보고 그것을 나누는 일은 즐거웠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씩 내게 음식을 선물했다. 간단한 과일도 있었고, 그녀가 직접 만든 갈치찜도 있었고, 김치 찌개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만나면서 누군가에게 음식을 선물하는 일이, 직접 요리를 해서 선물하는 일이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 지를 알았다. 나는 그녀가 만든 음식을 상에 차려 놓는 날이면,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그녀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어찌 이런 아이가 있을 수 있는지. 나는 왜 지금까지 한번도 음식을 해서 선물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런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 줄 알았다면 한번쯤 해 볼 수 도 있었을 텐데를 이야기 하면서. 아 정말 나는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참 배우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 했다.


지금도 가끔씩 내가 음식을 선물받으면 나는 여전히 그녀가 생각이 난다.  내게 지금 선물해준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토록 값진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내게 음식을 선물해준, 나를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  더불어 생각하면서. 그리고 아마 다음 번에 내가 어떤 특별한 음식을 만나거나 또는 선물 받거나 선물한다면 나는 그때는 오늘 내가 선물 받은 이 음식을 더욱 추억할 것 같다.  나는 오늘 먼 미래에도 회고 될 만한 추억에, 그대의 미역국을 추가했다.  


(내가 이리 감동을 받은 것은, 아마 이 미역국이 너무너무 맛있는데 기인한 것일 테지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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