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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Feb 28. 2018

꽃이 사랑이라면

남편과 꽃에 대하여

예전에 살던 곳은 1층과 2층의 상가가 길게 연결이 되어 있는 주상복합 이었다. 늘 오고가게 되던 그 상가들을 지날때면 2층 어느 한 곳의 꽃집에서 파는 꽃 들 중에 가게 문 밖에 내 놓고 팔던 한층 저렴한 꽃이 있었다. 때때로 작은 국화도 있었고, 후리지아도 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다가 꽃집 사장님이 싸게 내 놓으신 꽃이 있으면 냉큼 그 꽃들을 사서 들어왔다. 꽃들은 저렴하게 파는 대신 신문지에 포장이 되어 내 손에 놓여 졌는데, 나는 그 꽃들을 사와서 부엌의 식탁에 크리스탈 화병 한개를 놓고 그 안에 얼마간의 물을 붓고는 방금 사온 꽃들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우리집 식탁에 놓이던 꽃들은 저렴하게 샀지만, 나의 기분을 한껏 부풀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자주 나는 식탁에 꽃을 두었고, 그런 날 마다 사진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오빠, 이따 봐요.”

 라는 문자도 남기면서.


사실 우리집에는 생화 보다 조화가 더 많다. 꽃을 두고 보고 싶은 곳곳에 모두 생화를 두기에는 그 비용도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그보다는 매번 바꿔 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내가 온건히 해 낼 만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얼마간은 집안 곳곳에 꽃을 장식하기 위해서 근처에 한 인테리어 소품 가게를 알아두고 자주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맘에 드는 조화와 화병들을 구입했다.


남편은 나와 함께 자신의 친구를 만나러 갔던 어떤 날, 내가 그 친구 분께

“집에 한번 놀러오세요.”

 했더니,

“응 놀러와. 경옥이가 이것저것 왕창 사 놨어.”

 했다. 


내가 꽃 하나씩 살때마다

“오빠 이거 어때? 이쁘지? 이거 오빠 방에 문에 걸까요? 아님 방 안에 여기 둘까?”

 하고 물었을 때,

“다 좋아.”

 라고 간단하게만 대답했던 사람이었는데, 친구에게

“왕창 사놨어.”

 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었다.



남편이 죽은지 몇달이 지났지만, 아직 미래에 대한 계획을 확실하게 세우지 못한 나는 미처 거처를 옮기지 못하고 남편과 기거하던 곳에 그 꽃들과 함께 있다. 지금 이 글도 남편이 쓰던 방에서 쓰고 있지만, 이제는 이런 일이 어마어마한 슬픔과 그리움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와 함께 살던 곳에서 아직도 사는 일이 그리 힘든 일일 것도 없지만,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꽃에 대한 것일 것이리라 하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나는 생화를 사지 않은지 한참이 되었다. 물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올 즈음, 그 동안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가 태어난지 조금 지나 식탁에 올라가기를 좋아하게 되면서 생화를 꽂기 위해 구입했던 화병은 장식장 안으로 들어가버린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만약 지금 내게 남편이 있었다면 나는 어쩌면 근처 꽃집 몇군데를 돌아 저렴하게 파는 꽃을 구입하여 한번쯤은 꽃아놓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고서 아마 또 남편에게 꽃 사진과 함께 문자를 한번 보냈겠지.

“이따 봐요”

하고.


내가 가족을 이룬다면 내 가족이 사는 곳에는 꽃을 많이 두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어떤 선생님이 내게 해 주셨던 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그 이야기는

“사람은 사람 끼리 있으면 서로 비교가 되는데, 꽃이랑 같이 있으면 그렇지 않아. 꽃은 어떤 사람이든 같이 있는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해 주는 법이야.”

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잊지 않고 늘 기억했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에 꽃을 두는 일은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이 생기면서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하는 일임과 동시에 그를 위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도 분명히 꽃을 보고 예쁘다고 느낄 테니까. 뭔가 살아있다고 느낄 테니까. 아마 내 어릴 때의 아버지 같았다면 모든 일에 근검이 우선인 그에게 아무리 저렴한 꽃이라고 할지도 그것은 사치에 불과한 것일테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내가 함께 살았던 내 지난 남편은 내가 꽃을 사는 일에 대해서 한번도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먼저

“오빠 이거 되게 싸게 산거야. 이렇게 매주 바꿔도 그냥 밥 한번 같이 사먹는 돈 밖에 안들어.”

라고 선수치기는 했지만. 아마 남편은 내가 산 꽃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한적은 없는 사람이었기에 꽃에 대해서도 별말이 없었던 것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도 가끔씩은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은 했다.

“응 예쁘다. 어디에서 샀어?”

라고. 그러면 나는 또 신이나서 이야기 했다. 이동네 너무 좋다고. 꽃이 싸서 좋다고. 요 앞에 작은 꽃집 얼마나 꽃이 예쁘고 싼지 모른다고 이야기 했다.


꽃 이외에, 그동안 남편이 죽고 나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아이들에 관한 것들이 전부였다. 아비 없는 자식이 된 내 아이들은,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 나와 같은 훌륭한 어머니가 있으니 그리 안타까울 것은 없다는 실로 처연하게 진행되는 스스로의 위로가 몹시 부족할 때쯤엔, 가끔씩

“아 이럴때 남편이 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이런 얘기를 했겠구나”

 하고,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기 보다는 아이들을 키우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조금씩 마음속에 묻어나기는 했었다.


이제는 몇달 지났다고 그런것도 무뎌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끔씩 아이들이 말을 안듣거나, 아니면 너무 예쁘거나 할때, 그때마다 나는 늘 이렇게 이쁜 내 아이들에 대해서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고,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고, 집에 들어오면 오늘 아이들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첫째가  아빠가 죽고난지 몇달새에 갑자기 말이 엄청나게 늘었는데, 이걸 그 사람이 못보고 죽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 몇달 새에 아직 돌도 안된 둘째가 벌써 걷기 시작했는데, 아장아장 걷는 것이 즐거운지 이젠 기어다니지도 않고 걸을때마다 늘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작게 하면서 활짝 웃는 다는 것을 자세하게 이야기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 아쉬웠다.



뭐 이정도 였는데.

새삼 꽃이 생각이 났다.


(브루노 마스 bruno mars 노래 중에 when I was your man 노래를 듣다가 문득 꽃이 생각이 났다. 


나는 남편이랑 결혼하고 나서, 집에 꽃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보통은 연애할때 꽃을 주고 받는지, 이 노래에서의 화자는 헤어진 연인에게 꽃을 선물하지 못한 것을 그리워 한다.


I should’ve bought you flowers and held your hand

should’ve gave you all my hours

when I had the chance


그리고 자신이 못해준 일들을 그녀의 새로운 남자가 그녀에게 해주기를 바란다.

I hope he buys you flowers

I hope he holds your hand

give you all his hours

when he has the chance

Do all the things I should’ve done

when I was your man


꽃을 선물하는 일이, 손을 잡는 일이, 당신에게 시간을 쏟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면.)


남편 죽었다고 꽃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지는 내가 싫다는 생각도 들고.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도 안했는데.

우리 집에는 이제 꽃도 사라지는 걸까.


꽃 한송이 어디서, 내게,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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