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찡했던 말 한마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어느 날은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사람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전화를 하거나 톡을 해서 안부를 묻곤 한다. 같은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동생처럼 친한 사모가 생각이 났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전화하면 어제 만난 듯 서로 반가움을 전하는 사이이다. 좋은 것이 생기면 부담 없이 나누고, 가까운듯하지만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관계, 그래서 오히려 오래 편안할 수 있어서 오랜 인연이었다. 그러던 작년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더니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온 검사 결과는 자궁암이었다.
곧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차분함 속에
담긴 묵직한 슬픔이 나에게까지 넘어왔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아는 의사를 연결하고 병원을 알아봐 주면서 마음에 평안이 오도록 기도를 함께 했다.
치료는 시작되었고 시간은 흘렀다. 가끔 입맛이 없다면 입맛을 살릴 수 있는 음식을 택배로 보내주면서
서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다시 전화가 울렸다. 짧은 인사 끝에 ' 권사님.. 보고 싶다.'
그 한마디가 마음이 괜히 찡했다. 위로를 바란 것도, 슬픔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담긴 말 한마디에는 시간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만간 얼굴을 보러 가야겠다.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문득 보고 싶은 존재로 기억이 된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이 온기가 사라지지 않게 약속을 잡아야겠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쉽게 꺼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보고 싶음은 말이 되기까지 오래 망설이게 된다. 그동안 삼켜온 말 한마디엔 시간과 거리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더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에게 온 전화 한 통도 설명도 없었고, 이유도 덧붙이지 않았다. 괜스레 찡한 마음은 아픔을 견디고 있는 동생의 말이어서였을까, 아니면 그 말이 가진
진심이 너무 차분해서였을까. 전화 통화가 길게 이어 가지도 않았는데, 끊고 난 뒤에도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보고 싶다는 말은 관계를 붙잡는 말이 아니다. 진심 담긴 마음을 건네는 말이다. '그래, 조만간 보자'라고 말을 하고 끊었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간단한 말로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상대의 마음에 닿기도 하고,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내 마음에 닿은 말 한마디로
오늘 나의 하루가 결정되기도 한다. 보고 싶은 그 사람을 만나는 오늘이 되어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