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한 솔로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민영 Oct 21. 2022

나는 사촌의 결혼식장에서 쫓겨났다

[양민영의 한 솔로] 11화 결혼식 보이콧

▲ 결혼식에만 가면 바비큐 파티에 초대받은 비건이 된 것 같았다. ⓒ 게티이미지뱅크


이쯤에서 고백한다, 과거에 잠시나마 결혼주의자였음을. 그리고 친구들까지 결혼하면 좋을 것 같아서 있지도 않은 사교성을 발휘해 커플 매칭에 앞장섰고 친한 친구 몇몇을 결혼시켰다. '행복한 유부녀가 되어보자!'는 그 시절 우리의 캐치프레이즈였다. 나는 기꺼이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고 축사를 맡았다. 


그러나 친구들이 거의 다 결혼했을 무렵 이대로 결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곧장 비혼주의로 전향한 건 아니었고 당시엔 그저 '이 결혼을 피하고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만만찮은 대가를 치르며 결혼을 없던 일로 되돌린 사건을 계기로 얻은 교훈이 있다. 그건 바로 '누구와도 절대 결혼할 수 없다'였다.


그렇게 비혼주의자가 되고 나니 한 가지 곤란한 일이 생겼는데 바로 결혼식 초대였다. 처음에는 비록 내가 비혼일지라도 친밀한 사람들의 결혼을 축복할 아량쯤은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결혼식을 향한 반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매 순간의 꺼림칙함. 누구의 결혼이든 결혼식에만 가면, 마치 바비큐 파티에 초대받은 비건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육식에 반대하지만 고기 굽는 냄새와 고기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 모두 괜찮아! 내 친구들이 고기를 먹어서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세상에 어떤 비건이 이런 아량을 베풀까?


엄마와의 신경전


그렇게 영혼이 이탈한 채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 그만두고 싶던 무렵 사촌 동생이 결혼 소식을 알렸다. 오랜만에 언니를 꼭 보고 싶으니까 참석해 달라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특별히 해준 게 없는 언니로서 영혼 없는 하객 노릇을 한 번만 더 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결혼식 이틀 전부터 생각하지도 못한, 엄마와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결혼식에 무슨 옷을 입을 거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하게 알아서 챙겼다고 대답했는데 다음 날에도 엄마는 미심쩍은 태도로 나를 떠보곤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옷을 사주고 싶다나? 은근한 강요가 시작됐다. 


엄마는 불안했던 거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 눈에는 내가 선머슴이나 다름없었다. 저 선머슴을 데리고 결혼식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엄마를 떨게 했다. 외가 친척을 대거 만나게 될 게 분명한 결혼식이므로. 그러니까 엄마가 당장 내뱉고 싶은데 간신히 삼킨 말은, '하객용 원피스를 입고 화장해!'였다. 


나는 엄마의 불안을 모른 체했다. 꾸밈 노동을 그만둔 건 페미니스트로서 아주 중요한 결정이었고 이미 몇 년째 꾸미지 않는데 내 것도 아닌 불안 때문에 어색하게 화장하고 하이힐을 신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바람에 예식장으로 가던 차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엄마는 차창 밖으로 보이던, 황량한 국도변에 우뚝 선 아울렛 건물을 보면서 최후의 설득을 시도했다. 저기 들어가서 옷을 사지 않겠느냐고. 어림없는 소리, 나는 그렇게 내 의지를 관철했다고 생각했다.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도착한 우리는 아직 한산한 예식장 입구에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 안에서도 엄마는 계속 초조해 보였다. 그리고 모종의 결심을 했는지 나에게 말했다. "나가서 끝나고 피로연 때 와."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서점에 가고 싶다며? 다녀 와!"였다. 그건 내가 차 안에서 그 무렵에 출간된 내 책이 이곳 서점에도 있는지 궁금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기습적인 공격에 어안이 벙벙했다. 씁쓸하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엄마가 이겼다. 나는 엄마의 말에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고 서둘러 예식장을 빠져나왔다. 다른 사촌들이 도착했느냐고 전화를 걸었지만 그마저도 받을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무작정 번화가로 갔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억눌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도 엄마가 나를 결혼식에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해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를 지키는 게 급선무

▲ 코로나가 창궐하고 결혼식 보이콧이 한결 수월해졌다. ⓒ 게티이미지뱅크


비록 결혼하지 않았어도, 아니 오히려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예뻐야 했다. 그리고 엄마의 친척들에게, 이 상품은 성능이나 디자인 면에서는 하자가 없는데 상품 본연의 알 수 없는 고집으로 인해서 아직 판매되지 않았음을 눈으로 확인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해도 '쟤는 왜 결혼 안 하느냐'는 뒷말을 피할까 말까 한데, 딸년이 엄마를 망신 주려고 작정한 모습으로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한 거다(참고로 부연하면 그날의 차림새는 셔츠와 슬랙스, 그리고 플랫슈즈였다). 


똑같은 싱글이라도 남자는 인간이지만 여자는 상품이다. 여태 팔려 가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긴커녕 선머슴 같은 꼴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수치심을 모르는 뻔뻔스러운 짓이었고 그런 나를 가장 수치스러워 한 사람이 바로 나의 엄마였다. 


도대체 여자라서 겪어야 하는 일의 한계는 어디인가?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수트를 입었을 거고 화장하라는 압박은 애초에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그대로 예식장에 들어가서 친척들에게 '너도 얼른 장가들어야지', '참한 아가씨 어디 없나?' 하는 애정 어린 잔소리를 듣다가 그래도 엄마 모시고 사촌의 결혼식에도 오는 자상한 효자라고 칭찬 들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여자라는 원죄에 메인 죄인이었고 엄마는 몇 년 만에 만나는 친척들에게 '아무개 딸 뭐 저렇노?'라는 비웃음으로 모욕당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나를 모욕하는 쪽을 선택했다. 


엄마에게 배신당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대로를 걸었다. 익숙한 서점 체인의 간판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검색대에서 내 책을 검색하고 직원에게 다가가서 이 책의 저자인데 혹시 여기서 북토크 등의 이벤트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반색하며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들어도 행복한 말도 들려주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고 그곳을 나왔다. 


상품으로서의 모욕과 인간으로서의 대우,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는, 누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가까운 이들을 축복하는 아량이라니, 분수를 모르는 짓이었다. 나는 결혼식이라는 결혼주의자들이 만든 잠재적인 가판대에 오르고 싶지 않았고 모욕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 결정으로 인해서 내 세계가 좁아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후 우연하고도 다행스럽게 코로나가 창궐했고 결혼식 보이콧이 한결 수월해졌다. 역병이 선사한 뜻밖의 행운이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