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살며 미래를 준비하자
나는 공대 출신이고 지금은 IT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보통 엔지니어들은 저처럼 이과 고등학교는 나오고 공대로 많이 간다
오늘의 주제인 영어를 못해서 이과를 가는 것은 아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서 외국 기업과의 교류는 당연한 것이고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정착된지도 10년은 넘은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분당에 있는 한 IT기업에서 인턴 생활을 했었다
어떤 회사의 사무실에서 직접 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회사를 들어가서 받았던 첫인상 중에 가장 먼저 사무실이 두 개로 나눠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입구와 가까운 쪽의 방은 깔끔했고 TV나 영화에서 보던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두 번째 방은 느낌이 달랐다. 자리마다 모니터가 2대씩 있었고, 곳곳에 컵라면 용기와 과자봉지 등이 올려져 있는 지저분한 느낌의 방이었다. 모니터에 빠져드는 자세로 일하는 사람, 그냥 자고 있는 사람(단순히 피곤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밤새 일을 하고 집에 못 간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유 모를 빈자리 등 너무나도 다른 사무실 2개가 과연 한 회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지만 보는 순간 그 이유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깔끔한 곳은 문과 출신의 staff들이 있고, 지저분한 곳은 공돌이들이 열심히 소프트웨어를 짜는 곳이구나'
나도 처음에 컴퓨터 공학부로 입학하였기 때문에 왠지 엔지니어들이 있는 사무실에 눈길이 갔고, 나의 미래 모습인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우울한 느낌도 들었다.
왜 인턴 때 이야기를 꺼냈냐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도 저 정도의 차이는 아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엔지니어가 됐고, 밤샘 근무는 아니었지만 staff보다는 근무 시간이 훨씬 많고 이런저런 샘플 테스트 등을 이유로 자리도 자연스레 지저분하다(최근에 회사에서 지적을 해서 많이 깨끗해지긴 했다)
IT회사는 아무래도 엔지니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staff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인사, 재무, 영업, 마케팅 등을 의미하는데,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이나 마케팅의 입장에서는 뭔가 기술적인 질문을 받거나 요청이 오면 엔지니어들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 평소에도 각자의 프로젝트 개발/연구에 바쁜 사람들에게 뭔가 부탁을 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미안한데 이것 좀 오늘 꼭 마무리해서 00으로 보내주면 고맙겠습니다. 같이 좀 봐 드리면 좋은데 집에 일이 좀 있어서...(집에 애 봐줄 사람이 없다던지, 와이프가 몸이 아프다던지, 애가 아프다던지)'
대부분 집안일을 이야기하면 일을 부탁하고 집으로 가는 staff들
마음속으로만 외치다가 한 번은 정말 대놓고 이렇게 이야기한 적도 있다.
갑자기 와이프와 아들한테 미안해진다.
'괜히 엔지니어가 돼서, 제시간에 퇴근도 못하고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더 빨리 쌓이는 일로 인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예전 신입사원 시절 동기형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우린 여자 만날 시간도 없는데 결혼을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결혼까지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퇴직하는 선배들을 보면 조금 더 우울해질 수도 있다.
staff들의 경우는 아무래도 대외적인 교류가 활발하고, 어디 직장을 가도 동일한 staff를 하면 된다.
휴대폰을 팔다가 냉장고를 팔더라도 큰 틀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은 휴대폰을 개발하다가 냉장고를 개발한다고 하면 제품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적응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제품 엔지니어는 한 제품을 오래 담당했을 때, 경력이 되고 그 제품에 대한 마스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staff는 기본적으로 영어 등의 외국어를 대부분 잘하기 때문에 굳이 회사로 이직이 아니라도 잦은 출장 경험으로 해외에 나가서 정착을 하거나 여행사를 차리거나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지만 슬프게도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은 자기 영역 외에는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게다가 자기 전공 분야에만 워낙 집중하는 타입이라 재테크나 제2의 직장 등에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 결국에는 치킨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더 높았던 것 같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혼자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지금 이 순간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도 의무보다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 외에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만화책도 잘 안 보던 내가 책을 읽고 있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사는 삶과 생각들을 엿보며 공감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엔지니어라고 언제까지 한 분야에만 파묻혀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인정해주는 세상도 더는 아니다
아직 30대이지만 사람의 인생, 그중에 새로운 일들을 계속해서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시기는 매우 짧다고 생각한다. 물론 TV에서는 60 넘어서도 도전하시는 분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우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래도 배움의 속도가 빠를 수가 없어 훨씬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
'엔지니어로서 당당하게 살자'라기보다는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도전하는 당당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나 같은 엔지니어들은 전공분야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는 자신이 없어 위축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물론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이 있으면 당장 실천을 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이 있으면 당장 배우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당장 읽어보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막연하게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내가 관심 있고 할 수 있는 분야를 얼른 찾아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장미여관 밴드가 불렀던 [퇴근하겠습니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퇴근하겠습니다. 나 이제 행복 찾아 멀리멀리 떠나렵니다'라고 외치며 유쾌하게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대한민국 엔지니어들 모두 파이팅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