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1시. 택시를 타고 아이 학교에 도착해 후문으로 나오는 아이를 태워 동대구역으로 향한다. 1시 25분, 역에 내려 수서행 SRT를 기다린다. 플랫폼에 있는 편의점에서 초코 과자 한 통과 물 두 통을 산다. 기차 도착 안내 방송이 울리고,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 뒤에 줄 서서 올라탈 준비를 한다. 기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질서 있게 승하차가 이뤄진다. 그 속에 올라타 예약된 좌석으로 간다. 아이는 창가에, 나는 복도에. 익숙한 듯 짐을 내려놓고, 1시간 50분 동안 각자 할 일에 집중한다.
매주 월요일 이 시각, 아이와 나는 수서행 기차에 오른다. KTX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몰랐다. 기차표 예약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무임승차하는 승객을 볼 때마다 왜 미리 예약하지 않냐며 속으로 비난했는데. 예약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다. 황금 시간대라면 최소 2주 전에는 접속해야 한다. 표 끊기, 시간 맞추기, 잠들어 정거장을 놓칠까 알람 설정하기. 승객으로 타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는 바둑에 열중이다. 전공으로 할 건 아니지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편이다. 6세 때인 2019년 1월, 코로나로 유치원과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집에서 오목만 두던 아이들을 바둑학원에 보냈다. 마스크 끼고 한 시간씩 앉아있어야 해서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다며 더 있고 싶다 했다. 하루 한 시간 수업이 두 시간, 때론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적지 않은 수업료를 냈지만, 두 아이 모두 흥미로워하는 만큼 실력이 늘었다.
첫째는 3학년이 되며 영어, 수학 학원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토요일에 두 시간 정도 가며 취미로 받아들였지만 둘째는 여전히 주 10시간을 배웠다. 일찍 시작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인지 지역대회는 물론 전국 대회에서도 자주 우승했다. 2학년 2학기부터는 영어 학원을 다니느라 바둑 시간을 주 6시간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두각을 드러냈다.
아이가 바둑을 배우며 얻은 것은 단순한 기술 이상이다.
첫째, 집중력과 인내심이 커졌다. 한 대국에만 두 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다. 가만히 앉아있지만 목과 등에 땀이 흥건해진다. 평소 활동적인 아이지만, 바둑판 앞에서는 주변이 시끄러워도 미동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학습된 걸까. 책을 볼 때도, 숙제할 때도 오랜 시간 집중하며 끝까지 하는 편이다.
둘째, 사고력이 향상됐다. 교과 선행 없이 사고력 수학만 배우는데도, 심화 문제를 수월하게 푼다. 바둑에서 여러 수를 내다보며 생각하는 습관이 수학적 사고력 향상으로 이어진 듯하다. 바둑 배우는 아이들은 사고력 수학학원은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그래서인가 싶기도 하다.
셋째, 예의와 존중을 배웠다. 대국 전후로 상대방과 나누는 공손한 인사,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돌을 놓는 태도, 바른 자세로 임하는 모습. 승패와 관계없이 상대를 존중하고 결과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세. 이 모든 것이 바둑판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전문가들은 바둑이 기억력, 문제해결 능력, 판단력, 자기 성찰 능력까지 키운다고 한다. 단순한 게임을 넘어 종합적인 인지 능력과 사회성을 기르는 도구라는 점에는 격하게 공감한다.
얼마 전 일요일, 매년 열리는 지역 대회에 참가했다. 4년 연속 우승과 준우승을 해온 터라 이번에도 자신만만했던 아이. 예선을 쉽게 통과해서 나름 의기양양했던 아이가, 본선에 올라가자마자 탈락했다. 눈시울을 붉히며 패배를 인정하는 뒷모습에서 무겁게 들썩이는 어깨가 보였다. 2층 관중석에 있는 나를 보며 걸어오는 아이의 눈에는, 손등으로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는 눈물이 넘쳤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이를 이겨준 상대방 아이에게 고맙기도 했다. 이번을 계기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렸으면 했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 패배가 아이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더 배우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유인즉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알고 싶다는 거였다. 훌쩍 큰 키만큼 마음도 자란 걸까.
아이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엄마 아빠의 능력이 닿는 한, 좀 더 믿고 지지해 주기로. 이왕 이렇게 된 거, 익숙한 환경도 벗어나 보자고.
그렇게 매주 월요일, 아이와 나는 SRT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티켓팅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열차 승무원을 그만두고도 이렇게 자주 탈 줄 알았다면, 퇴사하지 말고 계속 일할걸. 하지만 이렇게 같이 앉아 아이의 꿈에 동행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위해 달리는 이 여정을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