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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Sep 27. 2024

높이뛰기, 그 이상의 도약

오전 7시, 아들의 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깨어있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 아이. 볼일 보고 손 씻고 나와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아 묻는다.

"오늘 아침은 뭐야?"

"시리얼, 해시브라운, 미역국 있어. 뭐 먹을래?"

"시리얼 먹지 뭐."


콘플레이크, 우유, 국그릇, 스푼을 가져다주면 먹을 만큼 덜어 먹는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까칠한 시리얼을 으깨듯 씹어 넘긴다. 맛있는 음식도 맛이 느껴질까 싶은 시간이지만, 빈속으로 가면 종일 배에서 소리 난다며 꾸역꾸역 입에 넣는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과 스푼을 싱크대에 넣으면 그제야 눈이 반쯤 떠지나보다. 칫솔을 입에 문 채 거실을 오가며 책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물통, 수저 통을 넣고, 신을 양말을 꺼내며 멀티태스킹으로 양치질을 끝낸다. 수전으로 흘러나오는 물을 손바닥에 채워 딱 한 번만 얼굴에 묻힌다. 수건으로 대충 닦고 나와, 옷 갈아입고 양말을 신는다. 로션과 선크림까지 바르고 나면 아침 준비가 끝난다.

가방을 메고 휴대폰을 챙겨 현관으로 나가 쭈그려 앉는다. 달리면서 풀리면 안 되니까 신발 끈을 인라인스케이트 끈을 묶듯 동여맨다. 첫째가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난 둘째도 운동장에서 하는 건강 걷기에 참여한다며 같이 나선다. 7시 22분.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집과 달리, 우리 가족의 오전 일과는 끝난다.



이렇게 시작되는 첫째 아이의 하루는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작년 가을부터 학교 육상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아들은 최근 높이뛰기로 종목을 바꿨다. 처음에는 100m 달리기를 주로 했지만, 승부를 걸기 어려울 것 같아 멀리뛰기로 바꿨다가 이제는 높이뛰기에 도전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로 향하고,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오후 훈련까지 소화한다.

오후 4시 30분, 훈련을 마친 아들을 데리러 가면 차 안에서 오늘 훈련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한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처럼 신나게 이야기한다.

"오늘 145cm를 뛰었어! 어떻게 한 줄 알아? 나도 이렇게 할 줄 몰랐는데, 티브이에서 본 선수들 보고 따라 하니까 되더라. 발 딛고 이런 거 할 줄 몰랐잖아. 카타르 바르심 선수랑 우상혁 선수가 하는 거 계속 봤거든. 첫날에는 135cm, 그다음 날은 140cm였는데 따라 하니까 되더라고. 선생님도 나보고 잘한댔어. "


자주 6년 전으로 올라간다. 강한 승부욕을 지녔던 아이는 또래와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잘 하지 않고, 사소한 게임에서 져도 받아들이지 못하던 아들을 보며 저도, 아들도, 선생님들도 굴곡의 시기를 보냈다. 패를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는 이긴 친구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는 날도 흔했다. 매번 말리고, 사과해야 했던 그 때.

여러 조언을 얻어 생각한 해결책이 바로 '운동'. 지는 것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운동만큼 정확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인라인스케이트를 시작으로 아들의 운동 여정이 시작되었다. 많게는 일주일에 3번, 두 시간씩 훈련하며 4년 동안 정신력과 체력을 키웠다. 이어서 축구, 수영, 줄넘기까지 다양한 운동을 접하게 했다. 패배를 인정하는 자세는 절로 터득되었고, 패를 받아들려는 목적이 아닌 체력을 키우는 걸로 자연스레 목표가 바뀌었다.


열두 살된 아들은 현재 160cm가 넘는 키에 36kg 정도 나간다. 여학생들 못지않게 날씬한 아들의 모습에 :엄마인 나도 자주 놀랍다. ‘잘 안 먹어서 마른 거냐, 이렇게 말라서 어떡하냐, 운동을 좀 줄여야 하는 게 아니냐'등 사람들의 말이 따라다니지만 개의치 않는다. 살찌면 동작이 느려진다며 좋아하던 콜라도 마시지 않는다.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온몸이 근육인 몸은 운동을 향한 아이의 진심과 노력의 증거다. ’빨래판 복근'도 또래 사이에서는 화제다. 옆 반 남학생들도 구경하러 온다며.


패를 받아들이고 건강해진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아들의 대인 관계다. 예전에는 매 학기 초마다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아들의 과한 승부욕과 이기심에 대한 항의 전화를 받곤 했다. 학교 번호가 휴대폰에 뜨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자동으로 죄인 모드가 되었는데 작년 가을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아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꽤 괜찮은 아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체육 시간이면 함께 팀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고, 주말에도 학교 운동장에서 같이 놀자는 친구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어떤 운동을 하든 컴컴해질 때까지 운동장을 지키는 모습을 볼 때면 긴 터널을 지나온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다.

반장 선거에서의 변화는 더욱 놀랍다. 1표, 3표밖에 받지 못하는데 이제는 7표에서 9표도 받았다. 당선 여부를 떠나, 가족 모두가 "대박이다!"라며 환호성 질렀다. 운동이란 매개체가 아들의 성격, 태도, 그리고 또래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거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운동을 전공으로 삼고 싶어 하진 않을까, 과도한 훈련으로 크게 다치진 않을까. 올해 1월, 과한 운동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장기간 입원한 적이 있다. 또 그런 날이 올까 걱정스럽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과하거나 체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운동량을 줄이고 휴식을 택한다.


운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자존감, 또래와의 관계, 심지어 좋아하던 게임에서도 멀어진 모습까지. 신체활동을 통해 배운 모든 것이 아이의 삶에 밑거름이 되겠지. 때론 집요하고, 집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배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큰 가치로 돌아올 걸 알기에 묵묵히 밀어주려 한다.



"높이뛰기, 그 이상의 도약." 이란 제목은 단순히 아들의 운동 종목을 넘어, 그의 삶 전체를 표현한다. 매일 운동장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하지만, 진정한 도약은 운동장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현관을 나서는 아들에게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를 전한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아들을 보며, 그 도전이 높이뛰기든, 친구와의 우정이든, 혹은 새로운 꿈이든 응원하리라 다짐한다. 아들의 열정과 노력이 만들어낼 미래를 상상하며, 오늘도 나는 아들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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