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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Sep 24. 2024

"뜨겁게, 적당히, 차갑게: 열정 온도 조절하기"

일요일 저녁, 아이들이 좋아하는 막창집을 찾았다. 앞에 대기하는 팀만 다섯. 기다리는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비밀은, 그 집만이 가진 불판에 있다. 다른 식당과는 다르게, 이 집 막창은 불판에 올리자마자 빠른 속도로 익는다. 테이블 중앙에 넉넉한 양의 숯이 들어있는 불판이 오는 건 곧 막창이 다 익을 예정이라는 신호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위장 소리를 도청이라도 하는 건지, 고기가 빠른 속도로 익어간다. 빠른 배속으로 오가던 젓가락 춤이 위가 진정될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그때부터는 반갑기만 하던 속도가 불편해진다. 굽는 속도는 더딘데, 열기는 그대로다. 낮춰도 여전히 뜨겁다. 결국, 빠른 속도로 마저 구워내고 불판을 치워달라 한다.

문득, 내가 이 불판을 대하는 모습에서, 다른 일을 대하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하고자 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때로는 너무 뜨겁게, 때로는 미지근하게, 때로는 차갑게 식지 않았을까. 시작할 때는 대단한 일이라도 해낼 것처럼 다소 소란스럽게 움직이다가 점점 사그라드는 내가 가진 열정처럼 불판을 대하고 있진 않았을까.




글쓰기 강사이자, 작가, 그리고 티 전문가로 활동 중이지만, 작년에는 책 출간에만 매진했다. 개인 저서 한 권과 공동 저서 세 권을 출간하기 위해 일 년 내내 식지 않는 불판처럼 열정을 불태웠다. 눈떠서 눈 감는 내내, 심지어 꿈속에서도 글을 썼다. 밤새 글 쓰며 살던 그때, 마감일을 넘기지 않으려 책상에 엎드려 쪽잠 자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올해는 어떠한가. 출간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없어서일까, 마감이라는 기한이 정해진 일이 없어서일까, 다른 일에도 동등하게 매진하기 때문일까, 2024년이 백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작년 오늘의 열정과 비교하면 한없이 미지근하다. 고기를 다 굽고 난 뒤의 불판처럼. 

이제는 그만큼 열기가 필요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 열기를 완전히 꺼버리면, 다시 달구는 데 시간이 걸린다. 현재 내가 가진 열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빈 종이, 모니터와 눈싸움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걸 보면.


나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오전에는 수영을, 오후에는 30분 이상의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같은 루틴을 2년 넘게 이어오고 있지만 초반에는 들쑥날쑥하는 날이 많았다. 

매월 1일만 되면 운동을 향한 열정이 극에 달한다. 운동센터에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사람들 에너지에 무임승차한다. 그들과 함께 매일 새벽에 일어나 수영하고, 스트레칭하며 운동에너지를 불태운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다 점점 줄어드는 회원들 숫자처럼 내 열정도 점점 사그라든다. 에너지를 초반에 다 쓴 터라, 힘도 없다. 더 건강해져야 하는데 지친다. 피곤하다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넘기는 날도 많다. 계획표에 엑스 표시가 늘어날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은 끝에, 이제는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만 운동하며 내가 가진 24시간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수요일 오전에는 티 수업을 배운다. 배움에 열정을 태우고 나면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머릿속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얼기설기 엉켜있다. 활활 타오르는 숯불처럼, 당장 올라오는 열정을 놓쳐버릴까 봐 조바심도 난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쏟아지던 잠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의 기록이나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그 열정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당장 뭐라도 할 것처럼 집중하며 들었던 강의가 기억나지 않기도 하고, 밑줄치고 메모하면서 읽었던 책이 생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도서관에 다녀오면 더 심해진다. 호기롭게 열 권씩 빌려오면 뭐 하랴. 반납할 때는 그중 삼 분의 일도 겨우 읽었는데. 심지어 펼치지 않은 책도 있다. 불판 위에 남은 재처럼. 




열정을 지속하는 법은 불판의 열기를 조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뜨겁게, 적당히, 때로는 차갑게.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첫째,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거나 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뜨거운 열정이 필요하다. 막창집 불판처럼 활활 타오르는 에너지를 반기자. 단, 이 상태를 지나치게 오래 유지하면 번아웃이 올 수도. 주기적으로 상태를 점검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대부분의 시간은 '적당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불판 위의 고기를 골고루 익혀야 하듯, 내가 하는 일을 향해 에너지를 골고루 분산하자. 일, 가족, 건강을 향해 적절하게 유지해야만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갈 수 있다. 

셋째, 때로는 열정을 식히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게으름이 아닌, 다음 단계를 위한 재충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성과를 정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열정을 지속하는 비결은 이 세 가지 상태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데 있다. 불의 세기를 숙련되게 조절하는 요리사처럼, 우리도 삶의 각 순간에 맞는 '열정의 온도'를 찾아야 한다. 때로는 뜨겁게 불타오르고, 때로는 일정한 열기를 유지하며, 때로는 열기를 식히는 과정을 거치며 지속 가능한 열정을 키워나갈 수 있다.

이제 당신의 삶을 돌아보자.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가, 적당한 열기를 유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인가? 

작가로서, 글쓰기 코치로서, 티 전문가로 살아간다고 선언한 내 온도는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 적당하면서도 차가운 온도에 장기간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열정을 뜨겁게 달굴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열정 온도를 조절하기. 불판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다. 활활 타오르던 불처럼, 내 열정도 다시 뜨겁게 태울 날을 마주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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