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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의 은밀한 비밀, 그리고 엄마의 분노

by 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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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첫째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첫째가 그 집에 놀러 갔다가 웹툰을 보게 되었단 말을 들었다. 자기도 아들이랑 같이 본 거라며 열 가지 정도 추천해 줬는데, 알고 있으라 했다. 가족도 함께 볼 만큼 안전하고 재미있는 거라길래 별일 없겠지 했다.

아이 스마트폰은 사용 제한 시간이 설정돼 있다. 하루 30분. 전화, 메시지, 검색 기능 모두 포함하기에 웹툰을 본다 해도 크게 시간을 많이 차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이 행동이 수상쩍었다. 나가는 거 좋아하는 아이가 밖에 나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했다. 피곤하고, 쉬고 싶다며 집에 있기를 고집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집을 나서면 언제 들어올 거냐고 물었다. 밖에 있으면 수시로 전화 와서 "지금 어디야? 어디쯤이야? 언제 도착해?"라고 물었다. 배고픈 시간도 아닌데, 혼자 있으니 외로워서 그런가 싶으면서 내심 불안했다.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찝찝함도 있었다. 그땐 알지 못했지만, 아이가 꾸미는 치밀한 알리바이였던 거다.


장염으로 이틀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내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같이 가자고 하니 속이 아프다며 자꾸 집에 있는다고 했다. 점심시간을 틈타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부산한 소리. 후다닥 TV를 끄고 소파에 누웠다.

열한 살 아이의 세상은 넓어졌지만, 점점 숨기는 게 많아지는 거 같았다. 친구들과 공유하는 비밀도 생기고, 부모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도 같았다. 그 세계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건 고작 30분이라는 시간제한이었는데, 그마저 흔들렸다.


어젯밤, 아이 폰을 열어보니 예상은 현실이 되어있었다. 하루 평균 한 시간 반 이상을 사용하고 있던 거다. 두 달 전, 아이 구글 계정이 해킹당하는 일이 있어 탈퇴했다. 그와 동시에 자녀 보호 기능이 해제된 것을, 나는 몰랐고 아이는 알았다. 그렇게 아이는 비밀스러운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이유, 자주 걸려오는 전화, 귀찮다며 거절하는 외출까지. 모든 게 스마트폰 속 세상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웹툰을 봤다고 했지만 유튜브 사용시간이 훨씬 길었다. 아이는 믿어달라 했지만, 이번만큼은 백 퍼센트 아이 편에 설 수 없었다. 하나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있었다.


목덜미부터 시작된 긴장이 손끝까지 퍼져갔다. 평소라면 차분하게 대화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몇 년 만에 분노가 폭발했다. 아이 행동이 무서웠다기보다,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계획하고 거짓말할 수 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또래에 비해 사춘기가 빨리 왔다고 해도 이런 모습을 이토록 이르게 만나게 될 줄이야.

삼십 분 넘게 화를 내고 나니 통증이 밀려왔다. 둘째는 방문 틈으로 들리는 목소리에 놀랐는지 조용히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나도 이불을 덮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매너의 역사』책을 펼쳤다.

여학생의 예법도 다룬 <품격 있는 아카데미>라는 매너서에는 분노를 표현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며, 다음 문장이 인용되어 있었다.

'실제로 나는 화내는 여성이 미모를 오래 보존하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봤다.'이 한 문장이, 정곡을 찔렀다.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때론 거짓말도 한다. 무조건 적인 신뢰, 믿음, 자유를 주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나의 통제와 분노로 다스리기엔 이미 너무 큰 건지도 모른다. 그 미묘한 균형 사이에서, 아이도 나도 휘청거리는 중이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반복될 거 같다. 하지만 오늘 일을 계기로 깨달은 바가 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게 아닐까. 어쩌면, 누워서 그 책을 들고, 하필 그 문장을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로서, 나는 이제 분노를 다스리는 법도 배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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