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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Oct 15. 2022

엄마가 '작가'라서

엄마는 알지, 숨은 의미를...


지난주는 2학기 상담주간이었다. 첫째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묻는다.


"어머님, 혹시 작가세요?"

"네? 아..."

"은준이가 수업시간에 적은 활동지를 보고 알았어요. 애들 키우면서 글까지 쓰시다니, 대단하세요."

"이제 막 쓰기 시작해서요... 감사합니다..."


아직 실물로 책이 나온 것도 아닌데, 민망함에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손발은 오그라들었다.

아직도 '작가'라는 타이틀은 낯설고 어색한 옷이다.

활기찬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첫째에게 물었다.


"혹시, 선생님께 엄마가 작가라고 했어?"

"응, 그런데 어떤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여러 선생님들한테 말했어?"

"아... 근데 책 제목은 말 안 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온라인 수업을 듣는 엄마를 보며,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원고 수정을 위해 출력한 용지에, 나만 알 수 있는 메모를 끄적인 종이가 집 안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엉망인 글로 뒤덮인 흰 종이를 한 번에 모아, 이면지 모으는 곳에 쌓아뒀는데 오며 가며 엄마가 쓴 글을 조금씩 봤나 보다. 내용도 대충 알고 있었다. 진짜 글이 쓰인 종이를 보며 우리 엄마는 작가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 거였다.


그리고 몇 일뒤, 아이 가방에 진로활동을 한 종이가 들어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직업 3가지를 골라 빈칸에 순서대로 쓰고, 까닭을 적어보라는 질문이었다.

1위는 마술사, 3위는 프로게이머인데 2위에 작가가 있었다. 이유는 '엄마가 작가라서' 란다.


'엄마가 작가라서' 마침표도 없는 문장이, 손에서 종이를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처음에 글을 배울 때만 해도, 내 이름 석자 적힌 책 한 권 출간이 목표였는데, 그 목표가 현실 속에 들어오고 나니 다른 게 또 하고 싶어졌다. 다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여행을 하고 싶고, 홍차 수업을 듣고 싶고, 서예도 배우고 싶고, 독서모임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싶은 등. 당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분주했었는데 글쓰기 수업만 있었을 뿐, 그 속에 '작가'라는 타이틀은 없었다.


아이들이 1살부터 10살 때까지 성장한 시간. 그 10년이란 시간을 책 한 권에 녹여냈다.

1년에 1뼘씩 자란 나와 아이들의 이야기로 200여 페이지를 채웠는데, 이어서 또 출간해야 하는 건가.

어떤 소재로 써야 하나, 언제쯤 두 번째 출간을 해야 하나, 머릿속에 질문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졌다.

아이들과 한 달 살기 한 내용은 이번 겨울여행의 경험을 추가하여 전자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알코올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술꾼 도시 여자들> 드라마를 보며, 우리의 술 이야기를 엮은 공저를 내자 했다.

전자책과 공저는 마음에 있었지만, 두 번째 단독 출간은 글쎄...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고, 엄마들도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지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엄마는 드문가 보다. 엄마가 '작가'라고 하면 다들 책 제목이 뭐냐고 묻는단다. 사람들의 반응도 재미있나 보다. 그럴 때 한 권의 제목을 말하기보다, 두세 권을 말하게 되면... 대답하면 할수록 옥타브가 올라가듯, 아이 어깨에 으쓱한 뽕이 솟으려나 별의별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공부할 때, 책 볼 때, 수업 들을 때 무심한 듯 지나가기에 크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여자들이 누군가를 보면 위에서 아래로 스캔하지만 티 내지 않은 것처럼, 아이도 내가 하는 일을 뚜렷하게 알고 있었지만 티 내지 않았나 보다. 말수가 적고, 단답형으로 말하는 아이가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다니 동공이 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은대 작가님이 하시던 말이 기억난다. 책 한 권만 내고 그만하는 작가들 보면 안타깝다고. 그 말에 동조하면서도, 두 번째 책에 대한 기획은 미정이었다. 그러나,  아이 덕분에 기획을 서서히 해야 할 것 같다. 흐리멍덩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글쓰기를 버섯 먹는 것만큼 싫어하는 아이가, 우리 엄마가 '작가'라는 걸 은근히 보여주고 싶어 그렇게 적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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