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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Oct 03. 2022

미루고 미루다 어느 날 문득

어제 오전, 한 참을 미뤄온 달리기를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달리기와는 사뭇 다른, 5분 달리기였다.

인친 들 중에서, 사시사철 달리는 분들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흐리거나, 맑거나 상쾌한 바람과 공기를 가로지르며 아침을 맞이한다. 그들의 인증을 볼 때마다, 감탄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둘러싸도,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어도 달렸다. 여름 장마의 빗줄기가 어깨 위를 거세게 내리쳐도 그들은 달렸다. 첫날은 5분, 다음날은 6분, 7분 이런 식으로 1분씩 늘려갔다 했다. 그렇게 매일 달리기 시작하다 보니 하프마라톤 대회 출전도 거뜬하다 했다. 


나의 로망은 티브이 광고 속에서 보던 달리기였다. 핫팬츠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이키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 채, ㄱ자로 굽힌 두 팔을 교대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뛰는 그런 달리기. 한강을 배경 삼아, 에어팟넘어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긴 달리기가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차가 있고, 인도가 있으며, 사람들 사이를 스쳐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달리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최근에 살이 많이 쪘음을 알았다. 휴일이라고, 연휴라고, 아직은 몸이 덜 풀렸다고 움직이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으로 나에게 오전 시간을 최대한 썼으니 좀 쉬자며, 안마의자에 누웠다. 그러다 문득, 마지막 운동이 언제였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2달은 족히 넘은듯했다. 간간히 집 앞동산에 오르긴 했지만 스트레칭, 근력 운동은 한 참된듯했다. 양말을 신고 신발 끈을 동여맸다. 


'그래, 달리자. 언젠가는 달리고 싶어 했잖아!'


물 한 통 들고 출발했다. 워밍업 한다며 5분은 걸었다. 곧이어 짧은 보폭으로 뛰기 시작했다. 폐활량이 부족한 편이라 5분도 버거울 줄 알았다. 생각보다 뛸 만하다 싶을 때 즈음부터, 따끔거림이 식도와 기도를 지나 목젖까지 타고 올라왔다. 그런데 그 순간, 야트막한 내리막을 만났다. 평소에도 지나던 그 길이, 뛰면서 보니 경사가 얕은 내리막이었다. 자전거를 탔다면 한 숨을 고르는 구간이었을까, 뛰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4분 경계선에서 헐떡이다가 만난 내리막은 달리기 시간을 조금 더 늘려주었다. 이 길이 뭐가 그리 반갑다고, 해맑은 아이처럼 두 다리에 몸을 맡긴 채 달려갔다. 내리막이 끝날 즈음 뒤를 돌아보았다. 이만큼 달려온 내가 뿌듯했다.

달리기를 인생에 비유하는 이들이 많다. 숨을 할딱거릴 만큼 힘든 구간이 있다. 끓는 물이 임계점에 다다르는 순간 즈음되겠다. 몇 초만 더 참으면 내리막길을 만나며, 목표도 이루고 쉬어간다. 물이 100도가 넘는 순간 공중에 수많은 풍선을 만들며 춤추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달에는 저도 달려볼게요, 달리면 인증숏 남길게요."

말은 참 쉽게 던졌다. 그래서일까, 내뱉은 말을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이 계속 달려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온 것일까.'달려야지, 달려야지' 하긴 했지만 마음을 단단하게 가진 적은 없다. 그러다 문득,

오늘 갑자기 달렸다. 요가나 스트레칭, 스쾃 대신, 왜 신발끈을 동여맸을까. 타인의 눈에는 충동적 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달려야 한다는 무의식이 지금이 달려야 할 때라며 신호를 준 것이 아닐까.


어제저녁, 드디어 나의 두 번째 이름인 닉네임을 바꾸었다.

닉네임 만드는 것에는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생각은 진작에 했지만, 정하지는 못했다. 생각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며 흐지부지하길 여러 번. 

그러다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 버렸다.

이틀 전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여기저기 의견을 물어봤다. 나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해 주는 분들 덕분에 닉네임이 생겼다. 그리고 온라인상에 공표했다.

남들 눈에는 갑자기 바뀐 듯 보일 수 있지만, 바꿔야 한다는 무의식 덕분에 마음먹고 뛰어들었던 것이다.

3차 추가 모집 중인 대학원에 지원한 것도, 개명한 것도, 전업주부였다가 갑자기 취직을 했던 것도,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글쓰기 수업 결제를 한 것도 모두가 나의 내면에서 부르는 신호에 응답하기를 미루고 미루다, 어느 날 문득 실행한 것이다. 


요즘은 자기 확언, 시각화를 하라 한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미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것을 새로운 언어로 정의하고 표현한 사람으로 인해 대중화되며 전염되고 있을 뿐.

오늘도 나는, 6가지 계획이 있다. 그제도 어제도 했던 것처럼, 이 글을 시작으로 나머지도 다 실행할 수 있도록 무의식이 주는 신호에 응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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