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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

by 소믈리연
ChatGPT Image 2025년 7월 4일 오후 03_57_24.png

아이를 키우면서 유독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라고.

3년 전에 출간한 저서에도 비슷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죠.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라고.


초등학생 때 천자문을 시작하고 사자소학, 동몽선습을 배웠습니다. 엄마의 강요에 따라 강제적으로 다녔기에 흥미 따윈 느끼지 못했습니다. 8시가 넘으면 등교하는 학생처럼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수업을 들었죠. 그나마 고등학교에 올라가 한문 과목 공부할 때 조금 도움 되긴 했지만요.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신문 속 어휘를 추론하고,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그때 한문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서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당에서 중년 여성들 틈에 앉아 붓으로 화선지 위에 한문을 적었죠. 그때 그 경험은 30년이 지난 이제야 빛을 발합니다. 도안을 따라 스케치하면 되는 민화를 그리면서, 그때 배운 게 존재를 드러냅니다. 몸으로 배운 건 기억한다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죠.


두 달 전, 승무원으로 일했던 동료를 만났습니다. 현재 메이크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혼주님들 메이크업을 할 때마다 "원장님, 엄청 삭삭하고 친절하시다"라는 인사를 자주 듣는다고 해요. 그냥 묵묵히 들어주고 중간중간 반응을 보여준 것뿐인데 왜 그런 피드백을 많이 듣나 궁금했다고. 전국 각지에서 오는 수많은 승객을 마주하며 절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터득한 거 같다고 하더군요.

저보다 세 살 많은 남자 동기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원래 동기 포함 선후배, 열차 팀장님, 기장님, 임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친분을 쌓을 만큼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도 가르치고, 아내분을 도와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러더군요. 사람들을 대할 일이 많은데, 그때 그 경험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주고 있다고요.


저 역시 이런 생각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는 엄마들이 생겼습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낯선 이들이, 아이를 통해 친분을 쌓아갔죠. 하지만 모두가 제 맘 같거나 좋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가까워짐에 따라 실망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청춘 시절 동안 다양한 인성, 인격,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10년 가까이 만나와서 일까요. 보통에 가깝지 않은 사람도 일반적으로 보였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점 자체가 저한테는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유별나게 보이는 사람도 평범하게 보입니다. 때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3년 전부터 어른, 아이를 대상으로 교육 관련 일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이란 단어가 주는 예민함이 있습니다. 지불한 만큼 결과가 나오거나, 눈에 띄게 발전하는 걸 수치로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무형의 상품이라 믿음이라는 전제를 깔기도 쉽지 않고요.

그렇다 보니 좋은 반응과 아닌 반응이 적절하게 섞여옵니다. 아닌 것 같은 반응, 사람도 있지만 그조차 쉽게 수용합니다. 오히려 팬, 충성 고객으로 남는 분도 있고요.

사람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지만 결국 관계 속에서 더 빛나는 존재입니다. 각자 가진 재능을 발휘하면서요.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는 걸,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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