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국제중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연락 바랍니다.'
한 달 전, 아이 학교에서 공지가 왔다. 높이뛰기 종목 지역 1위에 전국 순위도 괜찮은 편이라, 아이에게 관심을 보인 학교도 있었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신체적 재능은 남다른 신체조건으로 연결됐다. 6세 때부터 3년간 배운 인라인스케이트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줄넘기, 축구, 달리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골프까지. 어떤 운동을 하든 오래 지나지 않아 빛을 발했다. 근성과 끈기도 있는 편이라 단기간에 두각을 드러냈다.
5월, 전국소년체전이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회인 만큼 모든 아이들이 속된 말로 이를 갈았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오전, 오후에도 몇 시간씩 훈련에 참가했다. 학원 시간대를 바꾸고 결석까지 하며 매달렸지만, 이보다 더 열심히 연습한 아이들 속에 밀렸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순위권 안에 들 거라 예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평소 기량대로 나왔고, 다른 지역 아이들이 기록을 경신했다. 그 결과가 변곡점이 될 줄이야.
당연히 체육 중학교에 관심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아무 의사도 표현하지 않았다.
이틀 뒤, 편의점에 가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엄마, 000 있지? 걔 체중 간대."
"응? 그 친구도 운동했었어?"
"아니, 이제 할 거래."
"너도 가고 싶어?"
"아니."
"왜? 당연히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 안 갈래. 훈련하는 거 장난 아니야. 진짜 빡세. 내가 해봐서 알잖아."
의외였다. 가고 싶기도 하고 고민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타고난 체력과 신체적 조건을 보며 이미 아이를 스카우트하는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물어봤다. 어제보다 더 확고했다.
"그렇게까지 못해."
"그럼, 공부하는 게 덜 힘들 거 같아?"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주변에 예체능 하는 자녀를 둔 이웃이 꽤 있다. 바이올린 하는 아이는 하루에 연습 시간만 해도 상당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서울에 가서 레슨도 받는다. 피아노 치는 아이는 하루에 연습 시간만 6시간 이상이라 했다. 스케이트를 하는 아이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훈련하고 학교 갔다가, 다시 오후 훈련에 간다. 주말도 마찬가지.
세 아이 모두 이런 생활을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 뒤에는 숨은 조력자도 있다. 그들에게 엄마는 엄마이자, 코치이자, 매니저다.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밥 먹고, 숙제하고, 쪽잠을 잔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들 차량도 모두 카니발급이다.
비교는 금물임을 알면서도 나와 내 아이를 돌아보게 된다. 아이는 그만큼 연습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나도 그렇게까지 아이를 지지해 주지 못했다.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다.
앞으로 운동은 취미로만 하겠다는 아이를 보며, 나도 그런 마음으로 일을 대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본캐가 아닌 부캐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소상공인이자 1인 대표로 활동하면서 나름 고군분투한다고 하지만, 그 아이들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이 일에 목숨을 걸 정도로 하고 있는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훈련하는 아이만큼,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하는 아이만큼 내 일에 빠져있는지.
비교는 독이 될 수 있지만, 거울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 이제는 내가 답을 찾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