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골절 수술을 받고 한 달이 지났다.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발가락을 다쳤는데, 숟가락 들 힘도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몸이 아픈 사람으로 변했다. 퇴원 후에도 발이 심장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해서 5주 동안 집에만 있어야 했다.
집에 있는 성격이 아니다. 늘 여기저기 다니는 내 모습에 익숙한 지인들은 "집에만 있는 게 괜찮냐"라고 걱정했다. 같은 생각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한없이 늘어질 걸 알기 때문이다. 분명히 늦게 일어날 테고, 잘 씻지도 않을 테고, 느슨해질 거다. 경험에서 나온 확신 했으니까.
목발을 짚으니 겨드랑이부터 승모근까지 온통 아팠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넘어지지 않으려 힘을 많이 준 탓인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내가 쓰는 의자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서 왼발로 바닥을 밀며 앞으로 나갔다. 처음엔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고 앉아서 뒤로 밀었는데, 나중에는 등을 돌리고 앉아서 발로 밀며 앞으로 나가는 게 더 편하다는 걸 발견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렇게 다니다 보니 왼발 종아리, 오금, 발목까지 아파왔다. 발목은 사선 방향으로 틀어진 것 같기도 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부직포 청소기 막대를 들고 의자를 타고 다니며 먼지도 쓸었다. 걸레질은 못 해도 이 정도라도 해야 집이 깨끗해질 테니까. 다소 부족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살림을 해나갔다.
요리, 설거지, 빨래는 남편이 했다. 생각보다 집에 잘 있는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남편도 제법 살림을 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주 정도 지난 뒤, 그동안 미뤄둔 일들을 하고자 움직였다. 가로로 누운 소파에 등을 기대고, 무릎에 높은 쿠션을 깔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 각종 서류를 작성했다. 여성 창업 사업화 지원 사업, 대학교 편입, 외부 강의 계획서까지 모든 걸 제출했다.
50일 릴스 챌린지에도 다시 참여했다. 일주일 연속 영상을 만들었다. 남편, 언니, 아들이 카메라맨이 되어주면 편집은 앉아서도 할 수 있으니까. 미뤄두었던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집에 있는 큰 모니터 덕분에 왼쪽엔 강의 영상, 오른쪽엔 ChatGPT를 띄우고 내용을 정리하며 공부했다. 작은 노트북으로 답답하게 공부하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1년간 미뤄왔던 굿즈도 드디어 제작했다. 하루 만에 로고를 만들고, 3일 만에 완성품을 수령했다. "여태까지 왜 이렇게 미뤘을까" 싶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드라마도 정주행 했다. <다운튼 애비> 시즌 1부터 6까지, 총 55개 에피소드를 잠을 줄여가며 모두 봤다. 귀족들의 삶과 차 문화, 인생을 담은 대사들까지 건져 올렸다.
무더운 날씨와 장대비가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외출을 하지 않으니 와닿지 않았다. 더위도 잘 안 타는 편이라 집에서 선풍기만 틀고 지냈다. 오히려 밖의 혼란스러운 날씨로부터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집에 있는 걸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외출 총량을 이미 채워서인지, 아니면 성격이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2025년 7월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나를 재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강제로 주어진 쉼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해내고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제약이 오히려 창의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게 만든다는 걸 배웠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발가락 골절이라는 사고가 준 또 다른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