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쉬는 동안 수입이 떨어졌다. 오픈하고 1년도 채 안 된 상황에, 몸 하나 아프다고 모든 게 멈췄다.
누워있는 동안 짙게 드리운 생각이 있었다. 현타라고나 할까. 여태까지 내가 현장에 있어야만 수입 창출이 되는 일을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브랜드'. 작년부터 이와 관련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꾸준히 들으면서도 클래스를 알리는 데만 한정 지었다.
다른 방식으로도 운영했어야 했다. 아파도, 쉬어도, 나이 들어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주위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언젠가 하겠거니 하긴 했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이 그냥 내뱉는 말일 수도 있기에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석 달 전, 정부 지원 사업화 프로그램을 통해 기획서 쓰는 법을 배웠다. 그것을 넘어 1인 대표이자 소상공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것을 배웠다. 수업 신청하고 면접을 볼 때만 해도 '적당한 사업 있으면 기획서 쓰고, 지원금 나오는 걸로 사업에 활용하지 뭐' 이런 마음이었다. 그러나 강사와 수강생들을 보며 태도를 고쳐나갔다.
수업을 들을수록 내가 접목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정부 사업 추진 경험이 많은 강사님, 멘토님 의견을 반영해 현실 가능한 아이템으로 수정해 나갔다. 당장 실물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가상의 브랜드를 정하고 만들어갔다. 처음엔 진짜 막막했다. 강사님, 수강생들로부터 오는 피드백도 처참했다. 그들이 제시하는 아이템과 내가 하고 싶은 아이템의 불일치가 반복될수록, 괜히 왔다 싶기도 했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합의점을 찾으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점점 구체적인 아이템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실행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단지, 그 시점을 정확히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
5주 동안 아프면서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내년이 아닌, 지금 당장 하자고. 수입이 절벽으로 떨어지며 조급해졌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도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또다시 흐지부지. 그렇게 하기엔 배운 것도, 쉰 것도, 깨달은 것도 모두 아깝기만 했다. 글 쓰고, 영상 만들고, 강의하는 사람이 제자리걸음 성장한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깁스를 풀기만 하면, 쉬었던 기간만큼 미친 듯 움직이리라. 천천히 떼는 발걸음과 달리 머리와 심장은 뜨겁게 움직였다.
사업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냈다. 깁스한 상태로 면접도 보러 갔다. 민망한 몰골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에 대해 설명했다. 10분이란 시간 내에 내가 준비한 걸 다 설명할수록 구체적으로 해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선언의 힘에 의지하게 됐다.
최종 합격 후 300만 원을 지원받게 됐다. 담당자는 여러 분야에 쓰면 좋지만, 많지 않은 금액인 만큼 한 분야에 집중해서 쓰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로고 및 디자인 제작에 전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전에, 내 브랜드 상표명을 정해 특허출원을 하는 게 먼저다. 실컷 로고, 디자인 만들고 상표 등록이 불가하면 전량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 지역 지식 재산센터에 전화해 담당자를 찾아 IP 출원 관련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필요 서류를 작성해 보냈고, 변리사님과 연결됐다.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이라는 이름으로 혜택을 받았고, 추후 등록 허가가 나면 그때 등록비만 자비로 내면 된다. 1년 6개월이나 기다렸다가 거절당하면 안 되니, 특허 정보 검색서비스(KIPRIS)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 브랜드명을 하나씩 입력하고 유사업종에서 등록된 게 있는지 파악해서 최종적으로 3개로 간추려서 변리사님께 메일을 보냈다. 가장 가능성 있는 브랜드명으로 골라 로고 및 디자인 제작을 할 예정이다.
모든 소상공인이자 1인 대표는 이 과정을 지나 브랜드를 만들었을 거다. 상반기만 해도 이건 아직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알면서도 밀어내고 있었다. 이 길을 먼저 간 사람들, 이 길을 가려는 사람들을 만나며 언젠가 해야 한다면 지금 하는 걸로 마음먹고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아프지 않았다면. 그래서 클래스를 계속했다면 이렇게까지 일을 만들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로고와 디자인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에는 뭘 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완전히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있다.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나아가며.
드라마 <다운튼 애비>에서 로버트 백작 어머님 역할을 맡은 매기 스미스의 대사가 떠올랐다.
'새로운 일을 도전할수록 위기에 강해진다.'
마흔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모든 경험, 아픈 시간도 다 재료가 된다는 걸. 5주 동안 몸은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머리와 마음은 더 뜨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질없는 시간은 없었다.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걸 실현하면 되는 거다. 알고 보면, 누구나 '계기'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음 단계가 달라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