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로고 좀 만들어 줄 수 있어?"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영상 편집을 주로 하고 있지만, 혹시나 싶어 <티앤북클래스>로고 제작을 부탁했다. 캔바, 미리 캔버스를 활용해도 되지만, 감각이 부족한지라 잘하는 이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죠!"라는 대답이 도착하고 반나절이 지났을까. 완성작이 돌아왔다. 그것도 가로형, 세로형, 둥근 형, 네모형, 흑백까지 어디에 써도 될 만큼 다양한 버전으로.
이틀 전, 000 사 대표님을 만났다. 본격적으로 론칭할 티 브랜드 로고와 디자인 제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화 자금으로 진행하는 만큼 이 분야에서 일 한 경력이 있어야 했다. 이조차 아는 사람이 없어 겨우 소개 소개로 만났다. 직접 찾아온 분은 아직 앳된 20대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백팩을 메고 밝게 인사하는 그녀의 팔에는 쨍한 파란색 직사각형 포트폴리오가 안겨있었다. 자기소개 겸 건네는 책자에서부터 전문성이 느껴졌다. 앉자마자 아이패드를 펼치며 자신이 작업한 브랜드를 보여줬다. 어떤 콘셉트로 접근했는지, 고객 니즈는 어땠는지 설명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게다가
"브랜드명은 뭐라고 정하셨어요?, 사업계획서라도 좀 보여주시겠어요?, 어떤 방향으로 브랜드를 키우실 건가요?"
등 나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회 경험이 얼마 없을 거 같은데도, 창업 경력도 있었다. 상표명 등록과 관련해서 결정 못 하고 있던 상황인데,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 보자 했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어울리는 상표명을 견주며 등록 가능 여부도 같이 알아봐 줬다.
단순히 예산에 맞는 로고랑 디자인만 만들려고 온 건데, 내가 운영할 브랜드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고 외에 패키지 디자인도 중요할 거예요. 이런, 저런 디자인이 우선 필요해요. 나머지 항목은 순차적으로 늘리면 돼요. SNS 마케팅도 하실 테니까 그와 관련한 템플릿도 필요하고요. 현재 시제품은 어느 정도 완료됐나요? 온라인 몰은 어디로 생각하나요?" 등 질문이 넘쳐났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까지 그녀는 다 짚어내고 있었다. 당장 필요한 것부터, 몇 개월 후에 준비해야 할 것까지. 단계별 로드맵을 나보다 더 명확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있었다.
"다음에는 이런 정부 지원 사업도 알아보세요. 이대로 진행하면 이런 곳도 신청할 수 있을 거 같은걸요?"
투썸플레이스에 앉아 5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사드린 게 전부인데, 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한 시간 동안 받은 조언의 가치는 몇십 배에 달했다.
올해 들어 만나는 사람들 다수가 그렇다. 사업계획서 쓰는 법을 알려준 강사, AI 활용법을 알려준 강사, 사업계획서 작성을 코칭 해준 멘토까지. 하나같이 나보다 어린 분이다. 내가 갖고 있던 '요즘 젊은이'에 대한 편견도 깼다. 9to6, 워 라벨과 반대인 일상을 살았다. 늦은 밤, 주말 상관없이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개의치 않고 연락해 줬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탁해진 나와 달리, 이들의 열정은 맑고 뜨거웠다.
"아직 배울 게 많아요."
"더 공부해서 다른 것도 알려드릴게요."
"저도 언젠가는 성공해 보고 싶어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새롭게 깨닫는 게 있다. '나이 듦'의 진짜 의미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게 많은 걸 인정한다는걸. 그 용기를 바탕으로 배우고 행동함으로써 다른 이의 삶에 기여해야 한다고.
젊고 열정 가득한 이 친구들을 알게 된 것이야말로, 올해 내가 받은 가장 감사한 선물이다. 그들에게 받은 것을 잊지 않고, 나도 다른 이의 삶에 도움을 주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