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낯선 하루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by 소믈리연



ChatGPT Image 2025년 6월 26일 오후 06_31_42.png


프리랜서의 삶이란. 극과 극을 오간다.

바쁠 땐 한계를 갱신하며 살지만, 한가할 땐 백수가 천직이다.


4월 말부터 두 달간. 눈만 뜨면 글 쓰던 2년 전처럼 바쁘게 살았다. 정부 지원 사업 수업에 매주 3일 참석하면서 기존 강의도 그대로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살림, 아이들 학원 픽드롭, 수업 준비도 해야 했다. 24시간 안에 모든 일을 담을 수 없어 3년 동안 해온 오전 수영을 접었다. 서너 시간 자는 날이 반복되며 몸에 이상신호도 나타났다. 6월 셋째 주에는 출강도 몰려 있었다. 월요일은 지방 강의, 화요일은 수업, 수요일은 또 이동. 목요일 강의를 마친 후부터는 금요일 대회를 위한 발표 연습까지.

'왜 바쁜 일은 한 번에 몰아치는 것인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는 상투적인 말이 한숨과 함께 수시로 튀어나왔다.

금요일 오전 5시 30분, 중국사 수업을 마치고 대회장으로 갔다. 우수상을 받았지만, 집안 꼴은 '최악상'이었다. 저녁 수업 후 밤 10시부터 또 온라인 수업. 자정을 넘기며 "이제 정말 끝이다!" 혼자 소리 없는 쾌재를 불렀다.


다음날, 전사처럼 청소를 시작했다. 그동안 하지 못한 곳까지 완벽하게 하겠다며 움직였다. 예상 시간이 세 시간이나 늘어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화장실 변기는 윤이 날 정도로 닦고, 주방 싱크대는 약품까지 뿌려 새것처럼 닦았다. 틈새 공간까지 손으로 닦다가 지하 계단 위에 파리채 두 개를 떨어뜨렸다. 이따가 주워야지 하곤 잊어버렸다. 그것까지 치웠다면 '완벽한' 청소였을 테다.

그날 밤 외출하고 집에 돌아왔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지하실에 불이 켜진 걸 발견했다. 불 끄러 내려가다가, 미처 치우지 못했던 파리채를 밟았다. 완벽에 가깝도록 청소한 집에서, 1퍼센트 빈틈에 미끄러지다니.

쓸리는 물체를 밟는 순간 망했다는 걸 직감했다. 이 속도로 내려가다간 머리나, 허리를 다칠 거 같았다. 최악을 면하고자 온 발가락에 힘을 주는데 '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발을 보니 검지발가락이 우측 대각선 방향을 보고 있었다. 부러졌다는 증거였다.


일요일 오전이 되자마자 정형외과를 찾았다. 30분을 기다려 엑스레이를 찍었다. 뼈가 부러진 것도 아픈데, 인대 파열이 더 문제였다. 내일 오전으로 수술 일정을 잡았으니 그때 맞춰오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다며 바로 병실로 입원했다.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1인실에서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처럼, 아무 직업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아침 7시 반, 정오, 오후 5시 반만 되면 기계처럼 들어오는 식사를 먹고 잠만 잤다. 주삿바늘을 봐도 겁나지 않았다. 새벽에도 수시로 들어오는 간호사들의 기척도 모른척하고 잠만 잤다.

토요일 자정에 '이제 좀 쉴 수 있겠다'라고 좋아했다가 지나치리만큼 푹 쉬게 될 줄이야. 그동안 제때 못 먹은 식사, 부족했던 잠까지 3일 동안 몰아서 쉬었다.


이상했다. 휘몰아치듯 바쁠 땐 휴식을 갈망했는데, 막상 주어지니 달콤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깁스 한 발가락을 볼 때면, '이게 휴식인가?' 싶었다. 말이 씨가 된 걸까, '쉬고 싶다고? 그럼 실컷 쉬어봐! '라는 벌일까, '좀 쉬어가라'는 신호일까.

5주간 목발을 짚고 살아야 한다. 발가락에 통증이 올라올 때마다 바쁘게 살던 날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은 대가란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있다는 것, 누군가 내게 일을 맡겨 준다는 것,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 감사한 일인데 말이다.


목발을 짚을 때마다 다짐하게 된다. 지금, 이 낯선 하루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13화해야 할 일을 앞두고,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