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나는 인생 첫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40대 중반에 들어서며 말이다.
곡물 맛이 나는 쉐이크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이런 걸 마시게 될 줄이야.'
20대의 나는 한 번도 50킬로를 넘은 적이 없었다. 168cm에 47-48kg을 오갔다. 하루 여섯 끼를 먹어도 그 몸무게를 유지했다.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축복받은 몸이야." 살 빼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덜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철없었다. 그 과정에 숨은 극심한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때 입던 옷들을 다시 입는다면, 한쪽 다리만 겨우 들어가겠지.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서서히 달라졌다. 자연분만으로 낳으며 골반도 벌어졌고, 쉽게 붓는 체질로 바뀌었다. 처음엔 크게 달라진 걸 못 느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며 몸이 서서히 변했다. 조금만 먹어도 살이 붙었다. 운동하지 않으면 부종이 심해졌다. 많이 쪄봐야 54kg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빠졌다. 여전히 내 몸을 과신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뺄 수 있군.'
나의 건방짐을 눈치챘는지, 40대에 들어서면서 모든 게 확연히 달라졌다. 세포 하나하나가 변했나 보다. 운동 신경 제로인 나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였다. 1시간만 해도 온몸이 땀으로 뒤덮이는 '인 사이드 요가'를 했고 밤에는 산책을 했다. 팔공산 같은 곳으로 등산도 갔다.
며칠만 쉬어도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싫었다. 1킬로만 쪄도 무거워지는 몸인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안 됐다. 그렇게 52-53kg를 간신히 유지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올해 5월 초 황금연휴가 모든 걸 망쳤다. 5월 2일부터 6일까지, 5일 동안 자는 시간 빼고 계속 먹기만 했다. 먹으면서 다음에 뭘 먹을까 고민했다. 위가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먹는 양에 비해 운동량은 제로에 가까웠다. 먹으면서도 걱정됐다. '연휴 끝나고 운동 힘들게 하지 뭐.'
그렇지만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운동하려니 평소보다 더 힘들기만 했다. '살 빼야지' 하면서도 더운 날씨를 핑계로 밤마다 김치냉장고에 있는 맥주 캔을 꺼냈다. 거기서 그쳐야 했는데 늘 안주를 준비했다.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 만큼 체중이 늘어났다.
무정한 체중계는 그 지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55kg를 찍더니 56kg까지 올라갔다. 아침 공복에 잰 몸무게 55.4kg를 확인하는 순간, 벌어진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거면 안 먹었어야죠!" 아이가 쏘아붙였다.
아는데, 순간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먹을 때마다 생각했다. '지금 이걸 안 마신다고 해서 1년이 지난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할까?' 정답은 아니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시원하면서 청량한 한 캔의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몸의 신호는 더 적나라했다. 손발은 붓다 못해 아팠다. 신발이 꽉 끼고 쥐가 났다. 헐렁했던 반지는 꽉 껴서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 보면 진짜 내 살 일부가 될 것 같았다. 전신거울 속 내 모습은 낯설었다. 턱은 두 개와 세 개를 오갔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독하게 마음먹었다.
민화 선생님이 추천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샀다. 3주는 자신 없기에 일단 1주일 프로그램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오전부터 바로 시작했다. 55.4kg에서.
고비가 왔다. 쉐이크 한 잔에 기운이 빠졌다. 3시간 낮잠을 잤다. 일어나서 번지피지오 수업을 들으러 갔다.
"몸이 왜 이렇게 무거워 보여요?" 선생님이 말했다. 다이어트 시작했다고 하니
"하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게 어떠세요? 그 프로그램이랑 안 맞는 것 아니에요?"라고 했다.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겠다며,
"다음 주엔 날씬해져서 오겠어요." 라며 운동을 마치고 나왔다.
프로그램 안내문에 적힌 대로 이틀을 따라 했다. 이틀째는 식은땀까지 나는 것 같았지만 견딜 만했다.
금요일 오전, 몸무게가 54kg가 됐다. 토요일 오전, 53.4kg가 됐다. 일요일 오전, 드디어 53kg에 진입했다. 살 빠지는 게 눈에 보이니 힘들어도 신났다. 숫자가 증명해 주니까.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안 오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엔 달랐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고비는 못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식단을 하니 가족에게도 건강한 밥상을 주고 싶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메추리알을 덜 짜게 조렸다. 먹지 못하는 대신 코끝에 스치는 냄새를 모조리 들이마셨다. 그래서일까, 크게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먹지도 못할 밥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5일 차를 넘기며 깨달은 게 있다. 다이어트는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했던 일도 언젠가는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오늘 아침에 몸무게를 재어보니 53kg였다. 어제와 같은 몸무게지만 수요일 오전까지 52kg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상상하는 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해봐야겠다.
결론은, 44살에 처음 해보는 다이어트는 생각보다 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