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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모든 게 어설픈 엄마입니다

by 소믈리연
ChatGPT Image 2025년 5월 29일 오후 05_49_10.png

작년 가을에 공방을 오픈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글 쓰고, 가르치고, 티 수업을 위한 공간을 가진다는 게 목표였죠. 운영이 잘 안 되면, 저와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책 제목으로 치면 부제도 가지고 있었고요. 아들 둘 키우다 보니, 집에 있으면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더군요. '안 봐야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살림살이를 모른 척할 수 없었습니다. 집중하고 싶은데 여러 번 멈추다 보니 집중도, 흐름도 끊어졌어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만을 위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다가, 말로 했다가, 창업까지 하게 됐죠.

1인 대표로 다 역을 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클래스 하나를 열어도 직접 문구를 만들고, 디자인하고 광고까지 게재합니다. 블로그를 포함한 sns에 홍보 글을 올리고, 수시로 들어오는 상담도 해야 합니다. 한 타임에 두 시간 수업을 하지만, 준비 시간만 두 배 이상 걸립니다. 티 클래스는 자료 만드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수업 시작 전에 준비하고 마무리까지 4시간 넘게 걸리기도 하죠. 준비 시간만 합하면 일곱여덟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하루에 두 타임 이상 하는 건 무리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일만큼 중요한 게 남아있으니까요.


집에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그렇지만 엉성하게나마 주부로서의 역할을 하긴 합니다.

문제는 제대로 하지 않으니 곳곳에 먼지가 쌓입니다. 화장실 청소는 1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이 더 깨끗할 거 같았죠. 거실, 방 할 것 없이 걸레질하기 싫어서 아침저녁으로 부직포 청소포로 닦기만 합니다. 황사가 집 안에 있는 거 같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사는 걸 바랐던 게 아닙니다. 일도, 가사도 다 잘하고 싶었습니다. 잘할 줄 알았습니다.

'내일은 제대로 된 밥상 차려야지, 내일은 이불 빨래도 해야지, 내일은 걸레질 좀 해야지.' 하면서도 넘어간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집안일만 그런 게 아닙니다. 아이들 꼴도 엉망입니다. 햇볕이 강한 봄날. 집에만 있어도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 이때, 아이들은 세수하고 로션도 제대로 바르지 않았습니다. 학교 육상부인 첫째는 대회를 앞두고 한 달 동안 매일같이 경기장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로션도,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뛰니 피부가 까맣게 변했습니다. 국적이 헷갈릴 지경이었죠. 제가 발라주면 되는데, 제가 더 신경 써줬으면 되는데 말로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고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어느 날, 앞머리를 들어 올린 아이 이마에 여드름 같은 뾰루지가 가득했습니다. 목뒤에는 더 심했습니다. 자외선이 표적 공격을 한 건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 피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둘째 아이 옷에서 큼큼한 냄새가 났습니다. 분명, 세탁기에 돌려서 건조기에서 말린 건데 왜 이런가 싶었습니다.

양말은 분명 흰색인데 회색빛을 띠고 있더군요. 건조기에서 바로 꺼내지 않아 생긴 냄새, 삶기 귀찮아서 세탁기로만 돌린 결과였습니다. 후각이 예민한 아이는 바로 옷을 벗더군요. 다른 옷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세탁기로 넣었죠. 양말은, 그날 하루만 신고 버렸습니다. 곧 헤지기 직전이기도 했으니까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었습니다. 살림만 해도 제대로 할까 말까인데 말이죠.


지난주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가볍게 맥주 한잔하려고요. 주어진 시간이라곤 1시간 30분. 그렇게라도 밖에 나서지 않으면 폭발할 거 같아, 둘째 아이를 데리고 같이 만났습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집이 완전히 엉망이야. 남들은 애들 숙제, 학원 챙겨주느라 바쁜데 그마저도 엉망이고. 둘 다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 같단 생각에 아침에 울었지 뭐야."

그 모습을 보며 첫째 딸이 등을 토닥여줬다고 합니다. 엄마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그 모습을 보며 저는 그랬죠.

"좋겠다, 딸이라도 있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겪는 이 시기도, 앞을 향하기 위해 만날 수밖에 없는 여정인가 싶기도 했고요. 친구를 만나기 전만 해도 잘하고 있는 건지, 이 길이 맞는 건지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고민에 침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부터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누구나 지나가는 과정이라고요. 제가 존경하는 가수 이적 어머니로도 잘 알려진 박혜란 작가도 그랬거든요. 일하느라 세 아들 신경을 제대로 못썼다고. 애들이 스스로 자랐다고. 우연히 본 가수 션의 인터뷰도 생각납니다. '자식이라는 열매가 잘 자라길 바라기보다, 자녀들이 바라는 부모 인생,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자녀교육'이라고요.

버티기로 했습니다. 아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진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오늘도 제가 할 일을 묵묵히 해나 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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