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늦게 만나서 이게 뭔 일이고?"
마흔 넘어 만난 우리 셋이 수시로 하는 농담이다.
웃으며 말하지만,
진지하게 곱씹으면 웃을 수만은 없기도 하다.
처음부터 가깝게 지낸 건 아니다.
한 명은 하브루타 공부모임에서 알게 됐다.
자녀 교육 때문에 시작한 공부. 몇 년을 존대하며 필요한 대화만 오갔다.
'말 참 잘하는 엄마네.'라는 인상을 받은 정도.
다른 한 명은 동네 놀이터에서 만났다.
'학모'라는 타이틀로 만나 오가며 눈인사만 주고받았다.
늘 분주한 내 아이들과 달리,
유모차에 가만히 있는 그 집 아이가 신기했다.
쫓기듯 움직이는 나와, 여유로워 보이던 그 엄마.
아이들이 커가며 엄마들에게도 여유라는 게 생겼다.
아이들 꽁무니 쫓는 날도 줄어들었다.
점점 짧은 대화가 오가는 날이 잦아졌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공식.
이름보다 나이부터 묻는 통성명.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울타리를 넓혔다.
셋을 잇는 고리는 '나'였다.
하브루타에서 만난 친구,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각각 따로 알게 됐지만,
둘씩 만날 때면 나머지 한 명이 떠올랐다.
'셋이 만나면 기막히겠다'는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I 성향이라며 머뭇거렸지만,
셋이 함께 하는 날이 왔다.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00엄마 대신,
서로 이름을 불렀다.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온전한 ‘나’로 마주하게 됐다.
나이만 비슷한 게 아니었다.
자기 계발에 대한 욕심,
새로운 걸 배우고 즐기는 호기심,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는 추진력,
일과 살림을 오가며
매일을 바쁘게 살아가는 에너지까지.
우리는 닮은 점이 많았다.
텔레파시처럼 통하는 대화,
“ㅋㅋㅋ” “왜 웃는데?” “그래서 몇 시?” “어디로?”
몇 마디면 충분했다.
카톡만 울려도,
벨만 울려도
무슨 신호인지 다 아는 사이.
늘 가는 단골집,
우리를 목소리만으로 알아보는 사장님,
만나면 쏟아지는 이야기,
고민, 푸념, 미래가 얽힌다.
마흔 넘은 아줌마들이
풀어내는 칼로리와 에너지 소모량은 평소와 다르다.
다음 날이면 몸무게도,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해독하느라 골골대는 날도 있지만
그깟 수고쯤이야.
우리를 보며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애들 두고 그렇게 논다고?”
“남편이 뭐라고 안 해?”
가족들도 안다. 인정한다.
우리에겐 리셋의 순간이란걸.
“20대에 만났으면
아무도 시집 못 갔을 거야.”
그 말에 웃기만 한다.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여행, 맛있는 음식, 쇼핑,
운동, 명상, OTT도 좋지만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지나고 나면,
우리가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혼자 웃기도 한다.
가리늦게 만났지만,
아니, 가리늦게 만나서 더 특별하다.
마흔 넘어
만날 수 있게 해준 건
신의 의도일지도.
앞으로도 이들과의 만남을
이어갈 테다.
가리늦게 만난 친구들. 인생 후반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내 편, 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