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차 문화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차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만학도가 되었다. 온라인 수업이지만 지역별로 오프라인 모임도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지역 회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이틀 뒤에 있을 모임에 초대받았다.
편입생이지만 신입생이기도 한 나를 포함해 여섯 분이 모였다. 세 분은 1학기 신입생이자 편입생이라고 했다. "같이 밥 먹어요!"라는 제안이 반가워 바로 응답했는데, 도착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멘붕이 왔다.
나이대는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차에 대한 지식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떤 차류를 좋아하세요?"
"중국차는 이렇게 마시면 돼요."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팁과 매너가 오갔다. 활자에선 만나지 못했던 정보와 상식이 일방향으로 전해졌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민망했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아는 건 잡을 수 없는 지식이었다. 그동안 내가 배운 거, 읽은 거, 시험 친 거 모두 수박 겉핥기가 아닌 구경 하기였다.
"이 차는 무엇일까요?" 코끝에서부터 밀려오는 향은 그냥 차 나무에서 나는 찻잎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홍차, 청차 카테고리에서부터 헷갈렸다. 알듯 말 듯 하기도 했지만 하브루타 강사로도 활동했다는 사람이 모르는 게 들킬까 봐, 틀리기 싫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같이 편입한 분이 있었다. 올해 70이라고 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거 후회돼요. 괜히 왔다 싶어요. 여태 내가 알던 건 아는 게 아니었어요. 어디 가서 차에 대해 안다고 말하면 안 되겠어요."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다. 이렇게 내공이 대단한 분들과 같이 공부하겠다고 앉아있자니 민망했다. 신입생도 아니고 편입생으로. 4년 동안 공부할 지식을 2년 만에 끝낸다니. 그분들도 신입생으로 시작했는데. 나의 얄팍한 지식 현황을 파악하신 순간, 황당하셨을 테다.
차라리 백지상태이고 싶었다. 어설프게 알고 있어 더 민망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운전 학원에 등록하는 초보처럼 시작했다면 이토록 죄송하지 않았을 텐데.
친절하게 대해주셨지만, 스스로 찔렀다. 편하지 않았다. 차에 입문했다는 사실만으로 후회스러웠다.
이틀 동안 무기력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타인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만큼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모든 대한 대답은 '아니요'였다. 그런데도 그들의 초대는 또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이들 심리 수업에 갔다가 원장님께 이런 마음을 털어놨다.
"그분들도 같은 시기를 지나왔을 거야. 누구나 처음엔 잘 모르지. 이렇게 배워가는 거야"
당연한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차라는 분야에서만큼은 한없이 작아질까.
그분들도 나처럼 모르던 시절이 있었을 거다. 그 자리에 앉아계시는 것도, 압도하는 지식도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닐 테다. 아직도 공부하고, 국내외 산지를 다니는 모습만 봐도 그들도 끊임없이 알아가는 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느낀 민망함의 정체는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성장을 향한 열망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그러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려나.
오랜만에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다.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로 용기 있는 일을 한 걸 수도 있는데.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초보 시절이 있었다. 나처럼 민망하고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을 테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이 시기를 딛고 계속 이어갔다는 거.
나도 그럴 수 있겠지. 그래야겠지. 개강하기 전, 지금부터 말이다.
초보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시작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올라탄 것만으로도 성장에 들어선 거다.
세 시간 동안 느꼈던 민망함이야말로 배움을 시작하기 전에 마주해야 하는 관문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