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나는 집 대신 공방에서 잤다

오늘은 교육이 아니라, 내 마음의 응급처치가 먼저였다

by 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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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과 매일 부딪칩니다. 게임 때문이기도 하고, 생활 리듬 때문이기도 하고, 말투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집 안의 공기는 수시로 남극과 아프리카를 오갑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된 뒤 아이는 정오에 일어나 자정에 잠듭니다. 다수가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을 자고 16시간을 산다면, 우리 아이의 하루는 12시간입니다. 그 시간마저 상당 부분, 전자파가 흐르는 화면에 사용합니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태블릿으로 디엠을 합니다. 손에 쥔 기기만 다를 뿐, 패턴은 비슷합니다.

작년 연말부터 약속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하루에 3시간만 하자.” “규칙을 지키자.” “생활 리듬을 지키자.”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거나, 대답해도 시큰둥했습니다. 밤 10시, 11시에도 여전합니다.

"이제 그만해야 되지 않니?"

끄라고 한 번 더 말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합니다.

'조금만, '알아서 할게.'는 의견을 전하는 말이 아닌 암세포가 된 듯합니다.

다그치고 회유하며 내일은 조금이나마 달라지겠거니 대화하고 협상도 했습니다.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지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편과 출근하면 아이는 그 틈을 이용했습니다. 동생까지 매수하면서요. 등골이 여러 번 싸늘하면서도, 아이를 믿어보려 했습니다.


올해도 새해를 맞아 규칙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단 하루도 가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자기는 3시간만 했다"라고 말했지만, 기록을 보면 말이 달랐습니다. 데이터를 확인하자고 하면 무응답입니다.

나흘 전에도 실랑이 끝에 태블릿을 숨겼습니다. 다음 날, 아이는 기어코 찾아서 몰래 사용했습니다. 어제 오후, 그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하게 알게 됩니다. 엄마들의 촉은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나 봅니다.

안방으로 들어오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태블릿 가지러 왔니?”

"어"

"너 왜 찾았다고 말 안 했어?"

“엄마가 숨기니까 찾아서 몰래 할 수밖에 없었지. 내가 달라고 해도 어차피 안 줄 거잖아.”

'나는 내 방식대로 했을 뿐'이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미안함, 죄책감이란 건 보이지 않더군요. 오히려 그걸 숨긴 제가 죄인 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알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키운 아이가 맞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묵혀둔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와 고작 14살 된 아이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나름대로 하브루타, 육아서, 독서를 하며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 자식들과 사이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계속 공부해왔습니다. 감정을 내려놓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연속으로 마주하며 글로만 익힌 게 실전에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말투는 명령조로 변했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지시였습니다. ‘요즘 애들이 다 그렇다’라는 말도 억지 같았습니다. 어느새 저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지고 목소리도 갈라진 아이의 음성도 어색했습니다.

아이를 어른처럼 대하려고 애썼는데, ‘엄마를 더 만만하게 봐도 된다’로 받아들인 거 같았습니다. 분노를 넘어 무력감으로 오더니 짜증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제 감정을 한 단어로 말하면, ‘짜증’입니다. 기분을 표현하는 감정 단어가 아닌 저를 잡아먹는 덩어리 단어가 됐습니다.


어젯밤, 제가 일하는 공방에서 잤습니다. 집 안에 있으면 폭발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모습을 제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잠깐 씻으러 들렀다가, 또 한 번 부딪혔습니다. 침구 정리를 하라고 했는데 아이는 대놓고 한숨을 쉬고, 빈 깡통이라도 차는 듯한 걸음으로 움직였습니다. 우리는 또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여기까지 오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어디까지가 내 민낯일까. 이 감정을 오래 끌고 가면, 결국 가족을 갉아먹지 않을까.'

지금 제게 필요한 건 훈육법이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문제를 덮자는 뜻이 아닙니다. 책임을 묻지 말자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제 감정이 제 말투와 표정을 통제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더 뻣뻣해지고, 더 날카로워지고, 서로에 대한 혐오란 감정만 남을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표 방향을 바꿨습니다. '아이를 변화시키겠다'가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겠다'라고요.

저에게 하는 응급처치는 단순합니다. 일주일 전부터 위가 아파서 카페인을 끊었는데, 백차를 우렸습니다. 연하게. 차 한 잔이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치고 올라오는 화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저의 감정을 0에서 10까지 측정한다면 3 정도라고 느낍니다. 이성을 통제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은 하고 있으니까요. 곧 터질 폭탄과 소화기를 같이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해결이 아니라, 진정이 먼저니까까요.

말이 올라올 때, 바로 훈계하지 않기. 10분만 시간을 벌어보기.

약속을 어기면 예상되는 결과를 차분하게 나열하기. 혼내는 것보다, 조용히 실행하는 힘이 더 강할 수도.

엄마의 체력 챙기기. 기본이 무너지면 멘탈이 더 쉽게 무너짐.

이런 규칙을 세우면서요. 아이를 통제하기 위함이 아닌, 제가 저를 다루려고 적어봤습니다.


저는 아직 답을 모릅니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장기전으로 접어들면 제가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목표를 바꿉니다. 화를 없애는 엄마가 아니라, 화를 다룰 줄 아는 엄마가 되는걸로요. 아이와의 평화를 위해 제 마음부터 세우는 쪽을 선택합니다. 오늘만큼은 교육과 훈계가 아닌, 제 마음의 응급처치가 먼저입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봅니다. 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백차를 마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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