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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Mar 16. 2023

아이와 나, 우리의 인간관계


삼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초·중·고·대학 친구들을 시작으로 인턴 기간 함께한 이들, 직장동료, 조리원 동기까지 다양했다. 공유할 추억과 관심도에 따라 나눠진 관계라, 각기 고유한 특성에 맞게 소통했다. 이러한 관계가 오래갈 줄 알았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며 '학모'라는 타이틀을 가진 모임이 생겼다. 첫째 아이 어린이집과 유치원, 둘째 아이 어린이집과 유치원까지 관계가 추가됐다. 새로운 모임이 생겨날수록, 기존에 소통하던 이들과 자연스레 멀어졌다.  추억을 공유할 친구들이, 단어 그대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20대 시절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열차에서도 쉼 없이 움직였고, 쉬는 날에도 친구들을 만났다. 당시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으니, 최소한 다섯 번의 정기모임을 가진 셈이다. 일의 피로를 푸는 방법이, 친구들과 웃고 떠 듣는 거였다. 가족 못지않게 가깝다 했는데, 결혼을 하며 한두 명씩 타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멀어진 물리적 거리와, 다른 출산 시점이 간극을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러는 사이, 어린이집 학모, 운동센터 등 이동하는 장소마다 이야기를 나눌 엄마들이 생겼다. 여기서는 이런 얘기, 저기서는 저런 얘기 등, 대화하는 대상에 따라 주제도 달랐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이했다. 소통이 강제 차단되었다. 만나지 못하니 나눌 추억이 없었다. 추억이 없으니 대화도 없었다. 대화할 거리가 없으니 자연스레 멀어졌다. 엄마의 소통채널은 멈추다시피 했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와 나이대로 성장했다. 필요한 관계에만 집중하다 보니 관계가 자연스레 재형성되었다. 현재는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 만난 엄마들 모임, 첫째 아이 유치원 학모 모임, 하브루타로 만난 선생님들과 KTX 동기 모임이 전부다. 매일같이 이야기해도, 내일 또 나눌 소재가 넘쳐난다. 내 아이와 성향이 맞는 엄마들끼리만  모여,  어떤 죽마고우도 부럽지 않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나와 아이를 그럴싸하게 포장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 키즈인  아이들이라 초등학교 반 모임마저도  없어, 지금 이 관계가 더욱 진하고 밀도 있게 유지된다.


청순 시절만 해도 관심사가 다양했고, 여기저기 끼어드는 게 좋았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며 달라졌다.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쏟아붓되, 최소한은 남겨둔다. 방전 직전 간당간당하는 노란 배터리처럼, 엄마들과 나눠 쓸 만큼은 남겨둔다.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 고충, 아이들만의 에피소드 등을 나누며 웃고 떠들다 보면 분주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시간이다. 한 해, 두해 지나며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은, 이전보다는 엄마의 손길을 덜 필요로 한다. 손길이 줄어든 만큼, 엄마들의 대화 속에서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고 있다. 지금은 만남이 거듭될수록 우리의 일상과 관심사, 앞날에 대한 주제를 더 많이 다룬다. 아이로 인해 만들어졌지만, 엄마에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관계들. 네가 만든 친구들만큼 엄마에게도 좋은 인연을 만들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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