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믈리연 Mar 20. 2023

'쓺'이 채우는 ‘삶'의 백지


'사라락 사르륵'

빈 공간을 채우는 연필 소리가 고요함을 깨운다. 독서를 가까이하기 시작하며, 연필을 들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여백을 채우는 글뿐 아니라, 써 내려가는 특유의 소리에도 집중한다. 종이 재질과 연필 종류에 따라,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촉과 그려내는 소리가 다르다.  쓰는 행위도, '쓺'이란 '삶'도, 매일의 여백을 채우는 요즘이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샤프는 흔하지 않으면서 저렴하지도 않았다. 저학년 때, 샤프를 들고 오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필통 안에 연필이 많으면 무겁다는 게 핑계였다. 연필 몇 자루에 샤프 하나와 샤프심 통만 있어도 됐다. 선생님은 손힘을 길러야 한다며 사용을 지양했다. 실제로, 십 센티 정도의 가느다란 심을 한 번도 부러뜨리지 않고 공책 한 줄을 채우기란 쉽지 않았다. 손힘을 기를 수 없다는 건 알면서도, 꿋꿋이 들고 다녔다. 내 기억으로는, 연필의 품질도 그다지 뛰어나진 않았다. 거칠거칠한 부분이 종이에 닿으면 잘 써지 지도 않았다. 필기할 때, 공책 밑부분에 책받침을 대지 않고서는 칠판에 적힌 내용을 빠른 속도로 정갈하게. 쓰기 힘들었다. 심도 튼튼하지 않았다. 연필깎이에 돌리면서 빠지고, 책상 위에서 떨어뜨려 빠지니 오래 쓰지 않아 몽당연필이 되었다. 모나미 볼펜 케이스를 잘라, 남은 부분을 끼워 넣어 거의 끝까지 사용하라 했지만  그렇게 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손에 힘이 생긴 건지 샤프가 편했다.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인기가 많은 일본 샤프가 있었다. 그것을 포함해, 다양한 몇 가지의 샤프를 가지고 다니며 연필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이 년 전부터 독서량을 늘렸다. 독서를 한 후, 서평을 남겼다. 그러려면 책을 읽을 때마다 귀퉁이를 접고, 밑줄을 그어야 했다. 형광펜이나 펜으로 밑줄을 그으면 아무 곳에 나 밑줄을 긋지 않게 되지만, 연필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가 싶으면 지우면 되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가 지우면 된다. 납작한 갈색 천 가방 필통 안에는, 모둠 색 펜 하나와 형광펜 포스트잇 플래그, 연필 네 자루, 지우개 두 개로 꽉 차있다. 하나 더, 몽당연필에 끼우는 펜슬 홀더까지. 필통만 보면, 아이들 것과 내 것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유독 손에 잘 잡히는 연필들을 나열해 봤다. 예전처럼 육각형인 것도 있지만, 삼각형인 것이 많았다. 육각형은 쓰다 보면, 세 번째 손가락 안에 살이 움푹 패어 들어가는데, 삼각형 디자인은 덜 그랬다. 소위 말하는 '그립감'이 한결 나았다. 심도 부드럽고, 어느 종이 할 것 없이 '스르륵, 사르륵, 사사삭' 소리를 냈다. 백색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글을 쓰다 보면, 글 내용보다 소리에 심취할 때가 더 많다. 더 듣고 싶어서, 더 쓰기도 한다. 정갈하게 쓸 때보다, 휘갈겨 쓸 때 더 멋스럽게 들린다. 나무로 만든 물건에 끌린다는 것도, 자연에 이끌리는 이치와 비슷한 건가. 쓰면서 잡다한 생각을 펼치기도 하지만, 오전에도 '사사삭' 소리에 집중하며 독서를 마쳤다.


어릴 땐 어른들이 하는 것은 전부 좋아 보였다. 우리에겐 연필 사용을 강요하면서,  샤프를 쓰는 언니와 선생님이 동경의 대상이 된 것도 한몫했으리라. 삼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다. 필통 안에 가득하면 기분이 좋고, 연필꽂이에 여유 있게 꽂혀있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다. 샤파에 넣고 깎을 때 들리는 강한 소리와 손에 전해지는 진동도 좋다.  '쓺'으로 백지를 채우는 연필 덕분에, 내 '삶'의 백지도 채워간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와 나, 우리의 인간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