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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Mar 21. 2023

'걷기'가 주는 여유



걷는 게 좋다. 생각이 많을 때, 생각이 없을 때, 몸이 무거울 때, 몸이 가벼울 때 등 특정 이유는 없다. 걷는 행위, 그 자체가 좋다.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밤 열 시.  버스를 타면 삼십여 분 만에 도착하지만, 더러 걷기를 택했다. 친구랑 수다 꽃을 피우다 보면 이내 집에 가까워진다. 매일 생기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고등학교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후로도 자주 걸었다. 버스 타고 이삼십 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는 일부러 걸었다. 대학생 때, 아이리버 mp3가 유행했다. 소리** 이란 사이트에서 음악파일을 다운로드했다. 용량이 부족해, 지웠다 채우길 반복하는 수고쯤은 당연시했다. 음악을 벗 삼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랐다. KTX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 게 일상이었다. 신입 시절, 숙소에 도착하면 동기들은 다리가 아프고 발이 부어 주무르기 바빴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평소 걸음 수와 다를 바 없어 그랬을 터. 멘토 선배가 그만 좀 움직이라 할 정도였다. 마른 체구에 비해 대식가였지만, 먹고 돌아서면 허기졌다. 지인들은 저렇게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다며 소위 재수 없음을 말하기도 했다. 걸음 량이 많았으니, 허기짐의 연속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되며 걸을 일이 줄어들었다. 혼자 외출할 일이 없는 게 한몫했다. 첫째를 낳고 살을 뺀다며 저녁 늦게 요가학원을 다녔다. 버스 타면 세 정거장인 거리를, 이십 분 일찍 서둘렀다. 가끔 운동 후 돌아오는 길에,  돌이 지나지 않은 첫째의 울부짖는 소리에 발걸음을 재촉할 때도 잦았다. 전전긍긍하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달리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흙을 밟을 일이 없다 보니, 무리임을 알면서도 운동 가는 길도 걸어 다녔다. 아이가 둘이 되며, 두 발 대신 네 바퀴와 한 몸이 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집안에서 이삼 천보 걷는 게 전부인데 먹는 양은 별반 다르지 않아, 쉽게 살이 붙는다. 살쪘다고 말하면 또 재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만나면 화들짝 놀란다. '너도 살이 찌긴 찌는구나!'라는 반응은 말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다시 걷고 싶었다. 아이들과 따로 또 같이, 동네 뒷산을 일부러 오르지 않으면 만 보이상 걸을 날이 없다. 겨울이라는 핑계로 그마저 하지 않았다. 이번 달부터 달리기 챌린지 하는 모임에 가입했다. 달리는 건 엄두가 나지 않으니, 걷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나 같은 사람이 몇 명 더 있어 덜 민폐스러웠다. 남들이 이삼십 분 달릴 때, 그 시간만큼 걷겠노라 선언했다. 3월의 첫날. 걷기 위해 나섰다. 둘째도 함께 걷겠다며, 자기 폰에 만보기 앱을 깔아달란다. 애플워치에는 나이키 앱을, 아이 폰에는 만보기 앱을 깔았다. 장도 볼 겸, 첫 목적지를 마트로 정했다. 아이를 벗 삼아 걸으며이야기를 나누었다. 짝과 있었던 일,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 바둑학원에서 있었던 일 등 쉬지 않고 말을 하는 아이의 하루가 걷는 시간을 채워주었다. 집에 있으면 각자의 일에 집중하느라 대화가 끊어지기 일쑤인데, 같이 발맞추어 걷는 순간이 간질간질하게 다가왔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행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머리를 비워주기도, 정리해 주기도 하고, 관계를 돈독히 해주기도 한다. 기록을 공유하는 이들은, 걷고 뛰면서 만난 풍경을 전해주기도 하고  글로도 남겨준다. 차 안에서는 보이지 않거나 무심히 지나쳤을 것들이, '걸음'을 택함으로써 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백일 동안의 챌린지가 끝난 후에도,  아이와 함께 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체중 감량까지 보너스로 다가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욕심도 한 스푼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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