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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Apr 13. 2023

가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집으로 우편물이 왔다. 손바닥만 한 흰 봉투에는 CHANEL이라고 적혀있었다. 샤넬 코드 멤버십에 가입해 줘서 감사하다는 카드와 함께, 네모 지우개 크기만 한 작은 텍 4개가 들어있었다.  지인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샤넬 립밤을 보냈었다. 그 후, 카톡으로 도착한 링크를 작성했더니 이렇게 카드가 도착한 것이다. 

봉투를 뜯지 않고 며칠 동안 두었다. 첫째가 오가면서 채널에서 카드가 왔다 했다. 채널이든 뭐든 중요치 않았다. 내가 궁금해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뜯어보려 하지 않았다. 20,30 대 때만 해도 명품 매장이나 백화점에서 배송되는 카드와 책자를 받으면 특별한 대우를 받는 듯했다. 갈 일이 없고, 큰 소비를 할 일이 없어 더 그랬다. 결혼 후에는 더욱 갈 일이 없어졌다. 매일 비슷한 옷만 입고 놀이터에 살다시피 하다 보니, 거하게 쇼핑을 했다 해도 정작 들고나갈 곳이 없었다. 어쩌다 한 두 번 책자가 도착하면, 왠지 거실에 둬야 할 거 같았다. 해당 월이 훌쩍 지난 책자임에도 몇 달 동안 거실에 두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날이 갈수록 명품 매장은 물론 백화점도 잘 가지 않는데,,, 특별한 볼일이 있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특히 명품 매장이 즐비한 층은 일부러 가지 않는다.

둘째를 낳고 20개월이 지났을 무렵, 명품 매장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경력직으로 입사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세일즈를 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일의 힘듦은 차치하고, 고객들을 분석하는 눈을 키우게 되었다. 80 대 20이라고 하는 '파레토의 법칙'은 백화점 고객들에게도 적용된다. 상위 20퍼센트의 고객이 매출의 80퍼센트를 일으킨다. 상위 고객들을 또 세부 멤버로 나눈다. 매장에 근무한지는 열 달 채 되지 않지만, 소위 VIP라고 불리는 고객들을 만나보았다. 대부분은 매니저급 이상의 직원들이 응대하고 관리한다. 나 같은 일반인들은 가방이나 시계를 하나 구매하기 위해 오랜 고민을 하고, 찾아보고, 소위 모셔간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애지중지 여긴다. 일시불보다는 할부 결제도 흔하다. 그러나 그들의 쇼핑 방식은 달랐다. '명품은 저런 사람들이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실제로 매장에 근무하는 동안 물욕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매달 신상품이 쏟아진다. 다 숙지해야 한다. 여기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세계였다. 다른 브랜드까지 합하면, 매달 쏟아지는 신상은 가늠할 수 없을 듯했다. 사고 싶은 리스트를 골라 몇 번의 축소를 거듭하며  하나를 골라 사는 나였는데... 그들의 쇼핑 방식을 보며, 나의 현실에 명품은 아닌듯했다. 퇴사 후, 백화점을 향한 발길을 현저히 줄였다. 아이들 관련한 방문이 아니면 자제했다. 관련 층이 아니면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명품을 멀리하고 살았다. 의도적이었다. 사지 못할 거, 볼 필요가 없다 했다. 간혹가다 하나, 둘 사들이긴 하지만 고가는 아니다. 3대 명품 매장은 들어가지도 못할뿐더러, 돈이 있다고 해서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예전에는 브랜드에 비중을 두었지만 점점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이따금 어떤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예의와 품성이 바르고, 그들만의 아우라가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가진 배경을 따지면 명품을 장착해도 될 텐데, 의외로 관심이 없다. 이름 없는 가방이나 지갑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제품을 리폼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사람이 명품이라는 말이 저런 거구나!' 혼자 감탄한다. 소탈하게 다니는 모습이 더욱 명품스러웠다. '나도 저런 분위기를 풍길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그들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명품을 좋아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송희구 작가의 김 부장 이야기 2권에 나오는 정 과장 부부처럼. 한때는 나도 그런 적이 있었기에 이해도 되면서, 안타까웠다. 구매에 있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인 상황이 온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마음으로만 봤을 땐나 라는 사람 자체로 가치가 있는, '명품' 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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