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특기와 장래희망 사이
이틀 전인 토요일.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본선에 출전하기 위한 둘째의 일정에 맞춰 온 가족이 움직였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첫째 따라 취미 삼아 보냈는데 흥미를 보이더니 빠져들었다.
취미로 시작한 바둑이 특기로 자리 잡았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승패에 연연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삼 년이 흘렀다. 그 사이, 크고 작은 대회에서 빈 손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 3등, 2등, 1등 골고루 받았다.
빨리 시작한 만큼 결과가 좋았다. 같은 지역에 사는 또래 중에서 1등 자리를 고수하는가 하더니 2등으로 떨어졌다. 서울에서 이사 온 친구에게 한 번 밀리기 시작하더니 일 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머물렀다. 라이벌이기 전에 친구여서 그런 건지, 승부욕이 없는 건지, 아직은 그걸 모르는 나이인 건지. 지면 지는 대로 즐겁고, 이기면 이기는 대로 즐거워했다. 지금의 해맑음을 유지하며 바둑 본연의 즐거움을 잃지 않기만을 바랐다.
아이의 정신력이 강한 덕분일까. 바둑 자체가 즐거운 덕분일까. 해가 바뀌며 다시 1등의 자리에 올라섰다. 여전히 여러 등수 사이를 사이를 오가지만 배우는 자체가 재밌고 친구들, 형들과 노는 게 즐거운 2학년이다.
어느 날 아이가 프로바둑 기사가 되고 싶단다. 물어보고 찾아보니 축구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거보다 어렵단다. 프로입단은 하늘의 별따기란다. 된다 해도 살아남기가 힘들단다. 온통 부정적인 말 뿐이다. 선생님조차 특기로만 끝내란다. 바둑을 한 아이들은 공부를 늦게 시작해도 다 따라잡을 수 있으니 결국에는 공부를 시키야 한다며 반대를 표명했다.
그런 엄마와 선생님의 속을 알턱이 없는 아이는 이세돌, 신진서 사범님을 만나고 싶단다. 우리 집 아이돌은 BTS나 아이브가 아닌 프로 바둑 기사다. 축구 꿈나무들이 손흥민 선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남편이 이세돌 사범이 참여하는 대회가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온라인으로 예선전이 열리고 일주일 뒤에 서울에서 본선이 열린단다. 온라인 대국 자체가 낯설다. 아이는 마우스를 만질 줄도 모른다. 본선에 통과하면 네가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빨리 지원하라고 아우성이다. 초등 저학년 64명 중 8명만 본선에 통과하면 된다는데 1/8의 확률에 주사위를 던졌다. 초등 저학년 최종 지원자가 2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희망을 품었다. 단기간에 노트북과 마우스 조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온라인 대국은 오프라인 보다 훨씬 복잡하다. 대리참석 방지를 위한 규칙도 까다롭다. 여러 번 오리엔테이션 끝에 무사히 마무리하고 6등으로 본선에 올랐다.
일주일 뒤인 어제, 서울에 있는 바둑경기장에 도착했다. 하루 전날, 다섯 시간 가까이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자고 대회에 참여했다. 지방에서 열린 대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이세돌사범님이 눈앞에 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됐다. 토너먼트다. 한 판 승부로 끝난다. 대진 상대는 제비 뽑기다. 운도 필요하다. 첫 판을 이겼다. 4강전까지 두 시간이 남았다. 밥 먹고 돌아오란다. 지겨워하는 첫째는 근처에 사는 친구가 데리고 갔다. 둘째와 가까운 곳에서 밥 먹고 휴식을 취했다.
1시부터 준 결승전이 열리는데 12시 40분에 시작했다. 스무 명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대국이 펼쳐졌다. 창너머로 아이를 볼 수 있는데 일부러 멀리 앉았다. 아이의 상대는 예선전에서 1위를 한 아이다. 내가 참여하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터질 거 같다.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감을 잃은 아이, 주눅 든 얼굴이 떠올라 미치겠다. 예체능 시키는 부모들은 아이를 경기장에 들여보내고 어떤 심정으로 앉아있는 걸까. 창너머로 아이를 보던 남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단순한 아이라 표정에서 모든 게 드러난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대체 여기까지 왜 온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대회장 밖을 나오자마자 울먹이며 안기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구겨진다. 괜찮다고 하는 건 나한테 하는 위로인가. 공동 3위라 시상식까지 기다리란다. 사인받을 수 있단 말에 아이가 금세 함박웃음을 짓는다. 결승전이 시작됐다. 열 명의 아이들이 대국을 두고 있다. 대회장안에는 아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사범님이 있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을 마주하고 있다. 안에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긴장될까. 아니, 대국에 집중하느라 그럴 겨를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남편이 첫째를 데리고 왔다.
모든 경기가 끝났다. 시상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잔치다. 해맑은 아이를 보니 잘 올라왔다 싶기도 하다. 단체사진촬영을 마치고 포토타임이다. 사범님도 아이 아빠라서 그런가. 피곤할 텐데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첫째도 같이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을 피사체에 담는데 먹먹하다. 2023년에 들어 가장 행복한 아이의 모습이다. 이 순간을 기다린 아이는 내려가는 내내 싱글벙글이다. 고속도로를 올리기도 전, 뒷 좌석이 조용하다. 둘 다 잠들었다. 한숨이 나온다. 이제 시작인가. 예체능 시키는 부모는 어떤 마음인 걸까. 바둑 말고 공부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마음도 복잡하다. 모든 게 얽히고 설다. 집에 오자마자 둘째가 일기장을 꺼낸다. 오늘 있었던 일을 그리고 쓴다. 옆에 앉으라며 대놓고 일기장을 보여준다. 복잡한 엄마의 마음을 읽은 걸까.
아홉 살 인생, 엄청난 이벤트를 경험한 아이. 너의 시선에서, 너의 인생에서, 너의 마음의 높이에서 생각해보려 한다. 조금만 더 해보자고. 더 격려해 주겠노라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원해 주겠노라고 다짐하며 다음 일정을 체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