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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Oct 20. 2023

돈밍아웃

대학생 시절, 신입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는 나를 보며 한 친구가 물었다. 왜 일하는지, 어떤 목표가 있는지. 어른인 척할 필요 없어 좋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저 좋았기에 그 질문이 낯설었다. 눈만 슴벅이다 한마디 했다. "부자 되려고."

1초의 틈도 없이 웃음보가 터진 친구의 반응을 보며 기분이 상했다. 그렇게 벌어서 언제 부자가 될 거냐며, 네가 생각하는 부자는 얼마큼의 돈을 가진 사람이라 물었다. 속사포 랩 하듯 대답하고 싶은데, 뇌 회로가 꼬였다.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그런 건지, 생각 없이 살아서 그런 건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질문하는 친구에게보다, 눈만 뜨고 있는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티브이를 켰다. 엄마 또래의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돈'과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말했다. 돈이란 건 많아도 걱정, 부족해도 걱정이라고. 그냥 빚 안 지고 살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 저거지!" 하며, 그날 이후 빚 안 지고 살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답. 정. 너 같은 말을 했다.


직장 생활하고,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초반까지도 '빚'은 무서운 존재였다. 남의 돈 10원도 빌리지 못하는 아빠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빚'은 '이자 폭탄'을 가지고 사는 백해무익한 대상으로만 여겼다. 내 명의로 된 빚만 없으면 된 거라 여겼는데 빚이 생겨났다. 신혼 때 살던 아파트에서 다른 집으로 옮기면서 대출을 냈다. 또 다음 집으로 이사하면서 은행으로부터 많은 금액을 빌렸다. 자영업 하는 남편은, 일의 규모를 늘릴 때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늘렸다. 손등 위에 쌓인 두꺼비집 모래성을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내 모으듯, 은행에서 조금씩 빌린 대출액이 두꺼비집보다 커졌다. 남편은 대출 없이는 사업체를 운영할 수 없다고만 했다. 시댁 어른들도 개의치 않았다. 새가슴으로 답답한 건 나뿐이었다.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자영업을 하는 가정이 많다. 집마다 대출 없는 집 없고, 금액대도 천차만별이다. 아무 말 대잔치 같은 아무 빚 대잔치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빚 안 지고 살만큼'이란 문장도 애매하다. 사고 싶은 게 1억일 때, 그만큼의 현금이 있다면 빌릴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목표는 대개 향상된다. 1억의 건물을 가지고 싶었을지라도 몇 년 뒤, 목표한 금액이 올라갈 수 있다. 2억, 3억, 많게는 10억까지. 10억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정말 그 정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출을 이용해 더 높은 금액대의 건물도 소유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출 없이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만 투자하는 이들이 있을까.


아파트와 상가 등 부동산에 관심을 가질수록, '빚'에 대해 이중적인 개념을 형성하게 됐다. 현명하게 쓰냐 아니냐에 따라 빚으로만 남을지, '빛'으로 남을지 모른다. 후자로 만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그 빚을 이용하는 사람의 지혜다. '돈밍아웃'이라 말하고, '경제, 금융문맹 아웃'이라 고백한다. 작년 연말부터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공부는 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블로그 이웃들이 올리는 경제 관련 서적 서평이나 임장 후기 글을 보며 참 부지런한 사람이 많다고만 생각했다. 눈대중으로 읽기 시작하다, 점차 꼼꼼히 읽어보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지 않은 지역이라 관심 없다고만 여겼는데, 임장 다니는 사람들이 체크하는 공통적인 항목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블로그에도 방문했다. 비슷한 패턴으로 분석했다. 뭐랄까. 수학 공식처럼 그들만의 공식이 있다고 해야 할까. 자연스레 관심이 돈과 부동산으로 이동했다.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김승호 회장의 <<돈의 속성>>을 시작으로, 고명환 작가의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유튜터 뿅글이의 <<돈은 좋지만, 재테크는 겁나는 너에게>>를 읽었다. 일간 경제지를 구독하고 싶다고 말로만 내뱉다가, 뿅글이 저자의 추천에 따라 '밀리의 서재'에 1년 구독권을 끊어, 한경비즈니스 주간 경제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매일 챙겨 읽지 않아도 되고, 일주일 동안 나눠 읽으면 되니 학습적인 효과도 있었다. 국제유가가 왜 이리 치솟는지, 기준금리는 왜 오르는지, 팬덤은 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배경을 습득한다. 단순히 '돈'과 '빚'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넘어, 돈의 흐름을 배우고 있다.

20년 전, 막연하게 부자가 되고 싶다 했던 그때. 어쩌면 그때 내뱉은 한마디가 머릿속에 오랜 시간 침투해 있었나 보다. 한 해, 두 해 지나며 빚, 부동산, 투자 방법을 알고 싶어졌다. 뭐하나 시작하면 집요하게 파는 성격이 있는지라, 매월 경제지를 구독하고 관련 도서를 읽고 정리하고 현장 구경도 다닐 것이다. 돈에 무지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알파벳을 배우는 아이처럼 돈과 관련한 A부터 Z까지 배워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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