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켈트족의 한 갈래인 헬베티족이 스위스 땅에 정착했다. 기원전 58년 그 유명한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은 헬베티족을 정복했고 헬베티 족은 급속히 로마화 되었다. 스위스를 뜻하는 라틴어인 '헬베티아'는 이 헬베티 족에서 나왔다.
서기 4세기경에 일어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스위스 서부에는 부르군트족(프랑스어계), 동북부에는 알라만족(독일어계), 남부 지방에는 랑고바르드족(이탈리아어계)이 각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후,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거쳐 10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스위스의 대부분이 신성로마제국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았지만, 몇몇의 알프스 산악 마을들은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하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침략하자, 그것에 대항하여 피어발터슈테터 호수 근처의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3주는 1291년 뤼틀리에서 동맹을 결성한다.
이것이 현재 스위스 연방의 시초이다. 스위스라는 나라 이름 또한 슈비츠 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동맹에 가담하는 세력은 점점 늘어났고, 그 커진 세력을 기반으로 1499년 슈바벤 전쟁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군대를 물리친다. 이때부터 사실상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게 된다. 처음 3개 주로 출발한 동맹은 1513년 13개 주까지 늘어나게 된다.
16세기 유럽, 부패한 카톨릭에 대항한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이 종교 개혁의 불길은 유럽 전체로 옮겨 붙어 30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스위스는 이 혼란의 와중에서 중립을 선언한 후, 강력한 군대로 나라를 지켰다. 전쟁의 화를 입지 않은 체, 고스란히 국력을 보존한 스위스는 1648년 베스트 팔렌 조약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받는다.
179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스위스를 침공하여 동맹을 해체시킨다. 이로 인해, 스위스 연방은 한 차례 위기를 맞게 되지만, 나폴레옹의 패배 후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사후 수습을 위해 개최된 빈 회의에서 영세 중립을 인정받으며 전화위복 한다. 이때부터 22주의 연방으로 시작한 스위스는 1,2차 세계대전 같은 범 세계적 위기에도 중립국의 위치를 견고히 유지하며 오늘날까지도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인권과 평등을 중요시하는 유럽 대륙의 한가운데에서 여성의 선거권을 20세기 중반까지도 인정하지 않아 오다가, 197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정하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