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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12. 2019

동계 올림픽의 성지에 오다.

인터라켄- 취리히- 인스브루크

11살 일기

최고급 호텔에 왔다. 내일 조식이 기대된다.

   

9살 일기

이상한 아줌마를 봤다. 무서웠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오스트리아의 도시인 인스브루크로 가기 위해선 일단 어제 들렀던 취리히로 이동을 해야 했다.  취리히에서 빈으로 향하는 기차를 갈아탄 후 인스브루크 중앙역에 내렸다. '인스브루크'라는 도시의 명칭은 강의 이름인 인(Inn)과 다리(Brucke)라는 뜻의 독일어를 합친 단어에서 유래한다. 아마도 도시의 출발은 인(Inn) 강 양 쪽을 이어주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도시에 처음 들어선 순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머리가 하얀 눈으로 덮힌 '노르드케테 산'이 인스브루크를 푸근히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거대한 산이 신과 같은 모습으로 도시를 굽어보는 듯한 느낌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매일 저 장엄한 노르드케테 산을 마주하면서 대자연을 숭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란 힘들지 않았을까? 예로부터 티롤이라고 불렸던 이 지역에 무섭고 어두운 전설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는 건 거칠고 험한 산악 지방의 혹독한 자연환경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었다.

 

'안나 기념 탑' 너머로 보이는 장엄한 노르드케테 산

한 달 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심혈을 기울여 예약한 힐튼 호텔에 들어섰다. 우리 삼부자가 이번 유럽 여행에서 묵는 가장 고급의 숙박 시설이었다. 우연찮게도 얼리버드의 기회를 발견해 조식까지 포함해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할 수 있었던 호텔이었다.


 인스브루크에 오면서 떠올렸던 기대의 반은 바로 이 호텔과 조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연예 기사에서 '패리스 힐튼'이라는 유명인의 이름으로만 접하던 그  힐튼 호텔에 숙박을 하며 조식까지 먹는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대가 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힐튼 호텔에서 묵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정된 예산의 이번 여행에서 3 부자 모두가 제대로 된 5성급 호텔에 묵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다소 촌스러울지언정 기대감이 올라오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저렴하고 고만고만한 숙박시설에 꽤나 지쳐있었던 모양이었다.

혁우야 그만해 창피하다구~

게다가 더욱 좋았던 것은 호텔이 인스브루크의 유명한 관광지인 황금지붕, 헬블링 하우스, 왕궁, 궁전 교회까지  삼십 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친절한 프런트 직원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체크인을 마치고는 바로 길을 나섰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딴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 안나 기념탑에 도착했다. 인스브루크를 점령한 독일 남부 국가인 바이에른의 군대를 몰아낸 기념으로 세운 탑이다. 이 탑의 재미있는 점은 코린트 양식의 기둥 꼭대기에 서 있는 동상이 마리아의 엄마인 안나 성녀가 아니라 성모 마리아라는 사실이다. 정작 안나 성녀의 동상은 밑에서 기둥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동상 중 하나에 불과했다.  '안나'라는 이름은 단순히 '성 안나의 날'에 세웠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일 뿐이었다. '성모 기념탑'이란 명칭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한때 인스브루크를 통치했던 바이에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가 만든 ‘황금지붕’은 건물에서 돌출된 발코니의 지붕 모두를 전부 황금색으로 입힌 화려한 건축물이었다. 자신의 결혼식을 보러 온 각국의 상인들에게 부유함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규모가 큰 건물은 아니었지만, 사다리꼴 형태의 지붕 모습이 뭔가 동양의 목조 지붕을 연상케 하는, 유럽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었다.  

목조건물의 지붕을 연상케 하는 황금지붕

황금지붕의 대각선 맞은편에는 귀족의 저택으로 지었다는 헬블링 하우스가 있었다.  창과 창 사이로 수놓아진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곡선 문양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가우디의 건축물인 '까사밀라'의 발코니가 떠올랐다. 미역이 엉겨 붙어 있는 모양의 까사밀라의 발코니와 헬블링 하우스의 창문 밑 조각은 뭔가 닮은 느낌이 있었다. 불과 이십일도 안된 기억임에도 까마득한 추억처럼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여행의 시간은 깊고도 빨랐다.




“아아악~”     


비명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더니 기이한 행색의 여자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빠, 저 아줌마 왜 그래요?”

“글공연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기도 하고 그러네.”  

    

나름 치장을 한 것 같은 차림새를 보면 행위 예술을 하는 예술가인가 싶다가도 다짜고짜 사람들의 길을 막으며 소리를 지르는 무례한 모습을 보면 그냥 정신 나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며 현지의 주민이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까닭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그녀는 잠시 후, 이상한 비명 소리와 함께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강을 따라 펼쳐진 강변 공원을 한가로이 거닐다 '프라이스'라는 마트에 들렀다. 라면이 어디 있느냐는 일우의 질문에 이민자로 보이는 젊은 여자 직원은 영어를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쉴트호른에서 만난 스키 형 덕분에 모처럼 영어에 자신감이 생긴 일우의 과감한 도전이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반응이었다. 다행히도, 일우는 별로 개의치 않아 보였다. 결국, 라면은 혁우가 찾고 말았다.  


인스브루크에서의 첫 저녁은 그렇게 오스트리아 용기 라면과 과일이 첨가된 오스트리아 맥주 예거를 먹으며 보냈다. 마침 티브이에는 내년에 개최될 우리나라의 평창 동계올림픽 광고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동계올림픽을 두 번이나 치른 인스브루크에서 우리나라의 동계 올림픽 광고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무슨 이유로 유럽에서 우리나라 올림픽 광고가 방송되나 봤더니 방송채널이 우리나라에서 송출되는 외국어 방송인 '아리랑 티브이'였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한국 방송이라서 일까? 마치 우리나라 사람을 실제로 만난 것 마냥 무척이나 반갑고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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