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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14. 2019

형제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다-2

쿠타이스키장

11살 일기

혁우는 너무 위험하게 스키를 탄다. 혹시라도 다칠까 봐 걱정이 된다.


   

9살 일기

형은 나보다도 스키를 못하면서 잔소리만 한다.


올 초 여행하다가 다친 발목 탓에 다리에 힘을 주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오랜만에 타는 스키는 완전히 처음 타는 것처럼 새롭고 어색했다. 눈밭을 몇 번이나 고꾸라지고 굴렀는지, 나중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이 눈밭이 어릴 적 꿈꿨던 알프스 산맥이라는 사실 정도였다.


수없이 넘어지고 처박혔던 탓이었을까? 오후가 지나면서 피로감이 쓰나미같이 덮쳐왔다. 스키장 한구석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후 스키 부츠를 젖은 발에서 힘겹게 빼냈다. 벌겋게 달아오른 발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형제들은 신이 나서는 리프트를 놀이기구처럼 타고 내리고 있었다. 몇 시간 타더니 이제 완전히 자신감을 찾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체력은 여전히 쌩쌩한데 아빠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다.  


제법 스키 선수처럼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온 혁우가 내게 다가왔다.

 

"아빠, 아빠, 어떤 친구가 나한테 스키 가르쳐 줬어요. 그래서 나 이제 스키 잘 타요."

"어떤 친구? 여기 오스트리아 친구?"

"예! 내가 넘어져 있으니까 폴대 가져다주면서 가르쳐줬어요."


녀석은 이곳 친구가 가르쳐 줬다며 신이 나서 내게 시범을 보여줬다. 두 발로 ‘A’ 자를 만드는 아홉 살의 모습에서 제법 스키를 타는 폼이 났다.


"아빠, 좀 더 타고 올게요!"


스키에 재미를 들인 혁우가 다시 리프트를 향해 돌아갔다. 리프트의 안전바가 우리나라처럼 자동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 불안했지만, 믿고 내버려 두는 수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형제들의 성격은 스키를 타는 데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급한 성격의 혁우는 넘어지고 구르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타는 반면, 신중한 성격의 일우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속도를 조절하면서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경사면을 내려오고 있었다.  형제들은 각자 자신들의 방법대로 스키를 익혀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인생 또한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이제는 나도 스키 선수랍니다~

슬로프 한편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직접 스키를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오스트리아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쁘장한 딸들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토록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그들의 여유 또한 부러웠다.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마지막 버스는 5시 무렵에 있었지만, 막차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릴 것 같아 한 시간 일찍 나서기로 했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운행 중이었다. 아이들은 떠나기가 싫은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이들이 안타까웠지만, 대여한 스키 장비를 정해진 시간까지 돌려줘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오후의 버스에는 하교 중인 오스트리아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다소 짓궂은 장난을 치며 노는 소년 소녀들의 모습에서 거침없고 생생한 아이다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매일매일 정해진 학원시간에 쫓기는 우리네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시골스러운 건강함이랄까? 그것은 묘한 그리움의 감정이기도 했다. 이역만리 유럽에서 어릴 적 고향의 그리움을 느낀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신기했다.


1시간 정도를 꼬박 달린 우리는 무사히 인스브루크 시내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신어서 익숙할 법도 한데 딱딱한 스키부츠를 신고 더 딱딱한 보도블록을 걷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반면에 아이들의 얼굴은 조금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밝고 당당했다. 그것은 분명 오늘 숱하게 넘어지고 굴렀던 경험에서 얻은 성취감이었다.


렌털 샵의 주인은 오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확실히 그에게는 장사만을 위한 가식적인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사람을 반기는 여유로운 웃음이 있었다.  렌털 샵 안은 장비를 반납하려는 손님으로 가득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장비 반납은 빌릴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금세 끝났다. 무거운 장비를 벗고 나니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확신 없이 계획했던 알프스 스키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유럽에서의 스키 체험은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었던지라 계획을 짜면서도 많이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인터넷에는 이곳 인스브루크에서의 스키 여행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덕분에 영어나 독일어로 된 사이트에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 가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불안하게 시작한 계획이었던 만큼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는 사실이 더욱 만족스럽고 감사했다.

 


도전은, 그 불안의 크기만큼 성취감을 주는 법인 모양이다.


아~ 스키는 너무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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