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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06. 2018

벼룩시장에는 벼룩이 없다.

엘 라스트로 벼룩시장- 성 이시드로 성당

벼룩시장에는 벼룩이 없다.     

엘 라스트로 벼룩시장- 성 이시드로 성당     


11살 일기

아빠가 삼촌하고 둘이서만 술 먹으러 나갔다. 이 낯선 곳에 우리 단 둘만 남겨놓고 말이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살인마 제이슨이 방에 찾아올까 봐 무섭다.    


9살 일기

아빠가 삼촌하고 술 마시러 갔다.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았다. 아까부터 형은 문만 쳐다보며 짜증을 낸다. 찾아오긴 뭐가 찾아온다구. 형은 겁쟁이다.    




“아빠! 벼룩시장은 왜 벼룩시장이에요?”

“형은 그것도 몰라? 벼룩을 파니까 벼룩시장이지.”

“바보야, 벼룩을 어떻게 파냐?”

“어? 혁우, 어떻게 알았지? 없는 물건이 없어 벼룩까지 취급한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거봐. 형이 모른 거면서. 아빠 형이 바보라 그랬어요.”

     

나는 혁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벼룩은 사람 피를 빨아먹는 아주 작은 벌레인데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벼룩이 들끓을 만큼 오래된 물건을 판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믿기 힘들겠지만 실제 옛날 벼룩시장에서는 벼룩을 이용한 서커스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대.”

    

나는 아이들에게 1949년에 파리에서 촬영되었다는 흑백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얇은 실에 몸이 묶인 벼룩들이 작은 마차 모양의 모형을 끄는 장면이었다.

https://youtu.be/r9BjN_GHIic

실제 벼룩이 공연했다는 서커스 장면


“와! 신기하다.”

“이거 오늘 가면 볼 수 있는 거예요?”

“글쎄, 아빠도 처음 가는 곳이라 말이지.”

    

일단, 엘 라스트로 벼룩시장에 대한 흥미를 끄는 데에는 성공한 듯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의 흥미와 의욕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즐겨야 할 여행이 마치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특히 어제의 톨레도 여행은 더욱 그러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의 멘트처럼 적어도 오늘 하루만은 ‘숙제가 아닌 축제’로 만들기로 했다.     



휴일과 일요일마다 열리는 엘 라스트로 벼룩시장은 중세시대에 도살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마드리드에서 일요일을 맞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시장이라고 하니까 혹시 장난감이라도 살 수 있을까 싶어 아침부터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 또한 어제의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주었다. 중고라면 저렴하고 좋은 물건을 고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서 본 장난감들은 기대만큼 종류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있는 것들 역시 아주 낡고 조악한 물건들뿐이었다. 여행에 쓸 대형 트렁크를 구입하려 했지만 시장의 제품들은 하나같이 작거나 단단하지 못한 느낌이라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벼룩시장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는 쇼핑의 불만을 위로하고도 남는 면이 있었다. 아이들 또한 잠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림이나 책, 오래된 골동품에 관심을 보이며 즐기고 있었다.  

    

뭘 사야 하지? 사뭇 심각하고 고민하고 있는 형제들

 시장 곳곳을 경찰관들이 순찰을 돌며 소매치기 단속을 하고 있었다. 때때로 허가받지 않은 상인들이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상인들의 이름을 물어가며 확인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 넓고 복잡한 시장이 사소한 다툼 하나 없이 질서 정연하게 유지되고 있는 데에는 공권력의 힘과 규칙을 준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인들 중 몇몇은 손님을 모으는 것에는 전혀 무관심한 체, 책을 보거나 헤드폰을 낀 채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주말을 맞아 집 밖으로 취미 생활을 즐기러 나온 것 같았다. 그림을 파는 상점에 걸린 몇몇 그림에 흥미가 생겼지만, 금세 싫증을 느낀 아이들 덕분에 오랜 시간 구경하기는 힘들었다.

     

상인들의 판매 허가증을 확인하고 있는 스페인 경찰관들

 

이시돌 목장과 성 이시드로 성당


마요르 광장 쪽으로 뻗은 톨레도 거리에서 오래된 성당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일요일 미사에 참석하고 나오는 지역 주민들이었다. 성당의 이름은 성 이시드로 성당, 레알 궁전 앞에 있는 알무데나 대성당이 마드리드의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던 1993년까지 수백 년 동안 마드리드의 대성당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성 이시드로(isidro)는 마드리드의 수호성인으로 그를 기리는 축제가 매년 5월 15일 이곳에서 열린다.


제주도에 있는 성 이시돌 목장은 이 마드리드의 수호성인 이시드로(isidro)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인터넷의 어떤 자료에서는 이시돌 목장의 ‘이시돌’이 세비야의 대주교였던 이시도르(isidore) 성인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도 하는데 비슷한 이름을 착각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철자만으로 보면 ‘이시돌’이 ‘이시도르(isidore)'와 더 유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자료를 보건대 이시돌은 농부의 수호자인 ‘이시드로(isidro)’에서 온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수호성인은 지금은 개인의 세례명으로 존속하고 있지만 중세에는 개인부터 시작해 단체, 각 도시들도 자신의 수호성인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경우, 세례자 요한이었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마르코 성인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마드리드 또한 당연히 수호성인을 가졌는데 특이한 점은 그 수호성인이 앞서 말한 이탈리아 도시같이 성경 속 유명한 인물이 아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농부 그것도 소작농이라는 것이었다. 중병에 걸린 필리페 3세가 이시드로 성인의 유해를 만진 후, 건강을 회복한 사건이 이시드로 성인이 추서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산 이시드로 축제는 지금도 필리페 3세의 기마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마요르 광장에서 시작한다.

     

일개 소작농에 불과했던 이시드로가 성인이 된 이유는 정작 다른데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필리페 3세가 건강을 회복한 사건과는 별개로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소작농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지배층의 노림수는 아니었을까? 이시드로처럼 평생 성실하게 농사만 지어도 위대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소작농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높은 수확량을 올리게 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의심 많은 나였지만, 파이프 오르간이 장엄하게 울리는 성 이시드로 성당에 앉아 제주도에 있는 아내를 위해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음, 무슨 음악을 들을까?



 저녁에는 숙소로 찾아온 후배 J와 돼지를 숙성시켜 얇게 자른 하몽과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호텔 근처 가게에서 먹었다. 홀에 설치된 TV에서는 마침 레알 마드리드와 비야 레알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원래는 마드리드에 온 기념으로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가기로 했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과 관람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만두만 바로 그 경기였다. 2대 0으로 지던 레알 마드리드가 결국 3대 2로 역전을 했다. 축구장에서 보았으면 정말 재미있었을 경기라고 생각하니 아쉽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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