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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10. 2018

콜럼버스는 정말 그곳에 있을까?

세비야 대성당

콜럼버스는 정말 그곳에 있을까?     

세비야 대성당     


11살의 일기

아빠한테 좀 실망했다. 불쌍한 여자분이었는데 돈이 있으면서도 주지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울 거다.     


9살의 일기

나도 아빠한테 실망했다. 아빠는 간식을 너무 안 사준다.


  


     


다음 행선지인 론다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야 했다. 아침으로 라면 대신 시리얼을 주었더니 아이들이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이제 시리얼은 완전히 질린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가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오전의 세비야 거리는 어제저녁의 왁자지껄한 모습과 다르게 수줍은 듯 조용했다. 늦은 밤까지 맥주잔을 마주한 채 서로에게 웃음을 던지던 사람들이 있던 자리에는 일터를 향해 돌진하듯 걸어가는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세비야의 낮과 밤의 모습은 매우 달랐다.



정말 동전이 없어서였을까?  


세비야 대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버거킹에 들렀다. 콜라와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초라한 행색의 젊은 여자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구걸을 했다.

     

“아빠, 도와주면 안 돼요?”  

   

일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녀에게 돈을 주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지만 동전이 만져지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 구겨 넣은 얼마인지 모를 지폐가 손에 잡혔다. 지폐를 줄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는 순간에 여자는 다른 테이블로 가버렸다.

     

“왜 안 줬어요? 아빠.”

“응, 동전이 없었어.”

    

나는 정말로 동전이 없어서 그녀에게 돈을 주지 않은 걸까?

혹시 도움을 줄 마음 자체가 없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에게 돈을 건네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죄책감이 느껴졌다.

 

조용한 세비야의 아침


콜럼버스의 관이 공중에 들려진 이유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라는 세비야 대성당에 입장했다. 세비야 사람들은 두 번째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2위인 세인트 폴 대성당이 정통 가톨릭 성당이 아니라 가톨릭에서 분리된 성공회 성당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엄숙한 분위기의 성당 안으로 입장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콜럼버스의 관이었다.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고 싶지 않다는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히스파니올라 섬에 묻혔던 그의 유해는 프랑스가 이 섬을 정복하면서 쿠바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후 쿠바가 독립하면서 결국 스페인 땅 세비야로 보내지고 말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콜럼버스에 대한 예우로, 통일 전의 스페인 4개국 국왕의 동상들이 관을 들게 함으로써 그의 유언을 지켜주었다. 관이 들려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콜럼버스의 유언을 조롱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연을 알고 보니 나름 그의 유언을 존중한 스페인 사람들의 최선이 아닌가 싶었다.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갈 곳이 없어진 콜럼버스의 유해는 대항해의 출발지인 이곳 세비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었다.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있는 동상들


하지만 실제 이 관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처음 묻혀 있던 산토도밍고 성당에서 콜럼버스의 이름이 적힌 납 상자를 발견한 도미니카 공화국이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유해가 진정한 콜럼버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죽을 때의 나이가 대략 55세에서 60세로 추정되는 콜럼버스와 다르게 세비야 대성당의 유해의 사망 당시의 나이가 45세 정도라고 밝힌 최근 DNA 분석 결과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한 평생 바다에서 살아와 근육질의 체형이었다고 전해지는 콜럼버스와 다르게 대성당의 유해는 체구도 작고 근육도 별로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죽은 자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DNA 채취를 거절하고 있어 이 미스터리의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고 있다. 진짜 콜럼버스의 유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 탑은 원래 이슬람 사원의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미나렛’이라는 첨탑을 개조한 것이다. 이슬람 통치시기에 세비야 대성당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던 까닭이다. 히랄다 탑에는 여러 개의 종과 함께 바람의 방향을 나타내는 여성의 동상, ‘엘 히랄디요’가 있다. 히랄다 탑이라는 이름은 ‘풍향계’라는 뜻의 ‘히랄다’에서 유래되었다. 탑 꼭대기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나 빈 슈테판 성당의 탑과는 다르게 꼭대기까지의 통로가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로 만든 점이 특이했다.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좁은 통로였지만 미소를 지으며 서로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방문객들의 여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탑 위에서 시원한 세비야의 전망을 보고 내려오니 오렌지 나무가 가득한 정원을 만날 수 있었다. 원래는 이슬람 예배를 하기 전에 몸을 씻는 ‘우두’라는 의식을 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몇 해 전 ‘꽃보다 할배’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유명해진 곳이라 유독 한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히랄다 탑에서 내려다본 세비야 시내의 모습


세비야 대성당을 나와 알카사르 궁전으로 향했다. 구글 지도에는 바로 인근의 트리운포 광장을 지나면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길치 병이 도진 나는 입구를 찾지 못해 궁전을 가운데 두고 몇 바퀴나 빙빙 돌았다. 한낮의 태양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즈음, 마침내 붉은색을 배경으로 사자 문양이 그려진 ‘사자의 문’을 발견했다. 이렇게 지척에 있는 커다란 문을 이토록 어렵게 찾았다는 사실에 그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아빠, 우리가 무료입장이라니까 기분이 좋아진 거죠?”

    

일우에게 나의 웃음은 그렇게 보였나 보다.  

알카사르 궁전의 입구 '사자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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