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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09. 2018

맛있는 세비야

마드리드- 세비야- 스페인 광장

맛있는 세비야     

마드리드- 세비야- 스페인 광장

     

11살 일기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스페인 요리는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먹은 대구와 오징어 요리는 아주 맛있었다.  

    

9살 일기

너무 힘들고 졸렸다. 아빠가 안아줘서 좋았다. 다음에 힘들 때도 아빠가 안아 줬으면 좋겠다. 

    



평일 그것도 월요일 아침인지라 지하철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나라 출근길 지하철 같은 콩나물시루는 아니었지만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좁아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선 어깨에 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객실을 가득 메운 승객들 가운데 여행자는 우리뿐인 것 같았다. 잠이 덜 깨어 피곤해 보이는 출근길 직장인들의 표정은 스페인이나 우리나 매 한 가지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도 저 지쳐 보이는 그림 속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철저한 보안검색을 통과한 후 세비야로 향하는 고속 열차인 렌페에 올라탔다. 세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세비야의 중앙역인 산타 후 스타 역에 도착했다. 세비야는 정말 오래된 도시이다. 유럽 문명의 선구자인 페니키아 인들이 그 옛날 지중해를 탐험하다가 발견해 식민지로 삼은 곳이라고 하니 그 역사가 이천 년이 훌쩍 넘는다. 광장으로 나와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택시 승강장만 눈에 띄고 버스정류소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시내 방향인 오른쪽으로 뻗은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 짐을 들고서 버스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집회야? 축제야?


그 옆에서는 노랫소리와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류소 바로 옆에서 대규모 집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류소가 있는 언덕부터 그 아래 사거리 너머까지 거의 100미터 이상 되는 넓은 도로가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피켓이나 플래카드만 없다면 집회라기보다는 축제를 즐기러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도로 위에 가득 찬 군중 때문에 버스의 정상적인 운행은 불가능해 보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짐을 챙겨서 떠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의 뒤를 쫓아 구도심 방향으로 향했다.

    

축제 같은 느낌의  집회 분위기


"아빠, 데모하고 있는 거예요?"

"응, 그런 것 같네."

"근데 사람들이 즐거워 보여요."


일우 눈에도 이 광경이 특이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아빠 걸어가야 돼요?”

“응 그래야 할 것 같아.” 

"잉, 걷는 것 싫은데..."


아침부터의 강행군으로 벌써 피곤해진 혁우였다.  

    

 구도심으로 들어서니 평평한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돌멩이가 촘촘히 박혀있는 울퉁불퉁한 포장도로가 나왔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본 것과 같은 오래된 인도의 모습은 아마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힘껏 움켜 쥔 새 트렁크의 손잡이로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도로의 불규칙한 요철이 그대로 진동으로 전해졌다. 인도가 끝나고 새로 시작하는 지점마다 나타나는 턱은 왜 그리 높은지 턱이 나올 때마다 두 손으로 트렁크를 들고 내려야 했다. 혹시라도 바퀴가 망가지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드리드에 머물면서 새로 구입한 슈트케이스였다. 가격은 좀 비쌌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튼튼한 트렁크를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드리드에서 세비야까지의 기차요금으로 거의 400유로를 지불했기에 세비야에서는 숙박비를 줄이기로 했다. 마드리드 호텔의 반값 정도의 저렴한 호스텔을 찾아 예약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은 3층 계단까지 트렁크를 끌고 올라가야 했다. 어떤 사람의 후기에는 젊은 호스트가 트렁크도 들어서 올려줬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 젊고 예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한정 서비스인 모양이었다. 아이 둘 딸린 홀아비인 나는 호스트의 사람 좋은 웃음을 뒤로하고 배낭을 멘 체 씩씩하게 슈트케이스를 운반했다. 


우리는 4인용 도미토리를 우리 셋만 쓸 수 있게 해 준 것에 만족했다. 숙소에 손님이 없어 화장실이며 부엌 같은 시설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썩 청결하지는 않았지만 저렴한 가격을 생각한다면 가격 대비 성능 점수로 별 4개는 충분한 숙소였다.

       

호스텔이 위치한 오래된 세비야 골목

 

오페라 카르멘, 담배공장, 세비야 대학교


짐을 적당히 정리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김태희가 춤을 추는 광고와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를 촬영했다는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니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인 담배공장 건물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세비야 대학교가 나왔다. 카르멘은 이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이었다. 담배 산업이 발달한 세비야 시 전체에 퍼져있던 담배 공장들을 한 군데에 모은 것이 이 거대한 담배공장 건물이었다. 생산량 통제와 위생상의 이유라는 명목이었다. 지어질 당시에는 전 유럽에서 가장 큰 공업용 건물이었다고 한다. 카르멘의 작곡가 프랑스인 조르쥬 비제가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킬 정도로 유명한 공장이었던 모양이다. 팜므파탈의 원조 격인 집시 카르멘이 산업혁명 직전의 사회에서 담배공장의 여공으로 종사했다는 사실이 내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만든 담배를 피우며 공장에 매인 영혼의 탈출을 꿈꾸었을 것이다. 담배 공장이었던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니 스페인 광장에 도착했다.

      

스페인 광장의 분수



이미 날은 제법 어둑해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광장 한가운데에서 솟구치고 있는 분수가 주위의 빛을 반사하며 보석 알갱이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분명 음악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음악이 흐르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광장 곳곳에는 보트를 타거나 요가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움을 전해주고 있었다. 갑자기 혁우가 내 다리를 안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도 시차 적응을 못 끝낸 혁우가 꾸벅꾸벅 졸다가 내게 쓰러진 것이었다. 아쉬운 풍경을 뒤로한 채 예정보다 일찍 혁우를 안고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숙소 근처 '보데가도스 데 마요'라는 식당에 들러 저녁을 해결했다. 한국어 메뉴판이 있어 요리 고르기가 수월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었다. 특히, 대구 요리가 맛있었는데 알맞게 간이 밴 쫀득쫀득한 대구 살이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형제들도 맛있었는지 오징어 튀김 요리를 두 접시나 추가해서 먹었다.


 맥주 또한 시원하고 맛있어서 술을 잘 못 하는 내가 작은 잔으로 세 잔이나 주문해서 먹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음식을 폭풍 흡입하고 있는 혁우를 보고 있노라니 방금 전까지 그토록 졸려서 징징대던 아이가 맞는가 싶었다. 다음에 졸리다고 안아 달라고 할 때는 생각을 좀 해보기로 한다. 

마요 식당의 맛있던 대구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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