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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11. 2018

야경 관람은 다음 기회에

알카사르- 메트로 폴 파라솔

야경 관람은 다음 기회     

알카사르- 메트로 폴 파라솔


11살 일기

와플처럼 생긴 건물을 봤다.  배가 많이 고프니 건물이 모두 와플로 보였다. 진짜 와플이면 평생 먹을 수 있을 텐데.

9살 일기

아빠가 비싸 보이는 호텔에 재워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커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알카사르와 알카사바


흔히들 알카사르 궁전을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 작다는 점이  아기자기하고 정교한 느낌을 주면서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여겨졌다. 스페인을 여행하다 보면 ‘알카사르’와 ‘알카사바’라는 비슷한 느낌의 말 두 개를 만나게 된다. 구분하자면 ‘알카사바’는 성벽이 있는 군사요새를 말하고 ‘알카사르’는 그 내부에 있는 성 혹은 궁전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디즈니의 만화영화에 나오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성들은 ‘알카사르’이고 중국의 만리장성, 우리나라의 남한산성 같은 것들은  ‘알카사바’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두 단어는 모두 아랍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알카사르 궁전은 이슬람의 요소와 가톨릭의 요소가 공존하는 것이 인상적인 장소였다. 우상 숭배를 금하는 이슬람의 규율로 인해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지 못했던 이슬람의 장인들은 그 자리에 복잡하지만 규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을 그려 넣었다. 목욕탕에 붙은 타일 느낌의 아라베스크 문양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 유행했던 매직아이를 보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콜럼버스가 탐험의 원조를 얻기 위해 이사벨라 여왕을 알현했다는 사냥의 안뜰을 지나 정원에 다다랐다. 이층 회랑에서 바라보는 정원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얘들아, 여기가 왕궁의 정원이었대. 예쁘지?”


하지만, 아이들은 나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부터 신나게 군인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입장료가 무료라는 사실이 그나마 내게 위안으로 다가왔다.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들의 모습은 나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알카사르를 나와 오늘의 미션인 론다행 버스표를 사기 위해 프라도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히스팔리스’ 분수대가 있는 광장 주위로 다양한 숙소들이 보였다. 괜찮은 호스텔이 있어 검색해 보았더니 우리 숙소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저렴하고 좋아 보였다.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중심가인 이곳에 숙소를 잡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광장 왼편으로 유명인들이 묵었다는 알폰소 13세 호텔이 보였다. ‘1박에 얼마일까?’ 하는 호기심에 검색해보니 무척 비싼 가격이었다.

    

“혁우야. 나중에 너 어른 되면 아빠랑 엄마 저 호텔에서 재워줘."

“알았어요.”   

  

혁우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비싼데 괜찮겠어?”

“얼만데요?”

“하루에 60만 원이 넘어.”

“예?”

“그럼 오래는 안 되고 며칠만 해줄게요.”

“오래는 안 돼?”

   

내가 피식 웃자 혁우도 따라 웃었다. 수십 년이 지나 혁우가 이 알폰소 13세 호텔을 예약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막상 그때가 되면 나는 저 호텔에 머물 수 있을까?  얼마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도 저 호텔에 머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적당히 저렴한 곳에 숙박을 하고, 남은 돈으로는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 않을까? 내게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알카사르 궁전의 정원


프라도 버스터미널에 가서 론다행 버스표를 구입했다. 창구 직원이 내가 쓰는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소통이 힘들었다. 결국 번역 앱을 켜서 스페인어로 번역한 후 확대해서 보여주고 나서야 표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정확한 날짜나 시간을 이야기해야 할 때는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서 보여주곤 했다. 그 편이 오히려 간편하고 정확해서 좋았다.


“와플이다!”

“저게 다 와플이면 좋겠다.”   

  

배가 고팠던 아이들의 말대로 ‘메트로 폴 파라솔’은 몇 개의 기둥 위에 커다란 와플을 올려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여러 개의 버섯이 엉겨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고인돌 같기도 했다. 가우디 건축물에서나 볼 수 있는 부드러운 곡선의 느낌이 아름다웠다. 건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섰다. 철로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특수 목재로 만든 목조 건물이란다. 건물 내부를 구경하려고 들어가는 순간, 아이들이 내 손을 뿌리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놀이터를 발견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나니 홀가분하게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메트로 폴 파라솔’에는 3유로에 음료수까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유명한 전망대가  있었다. 태양이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야경 감상도 가능할 것 같았다.  

    

거대한 와플 모양의 '메트로 폴 파라솔'

“아빠. 배고파요!”

“대구 먹으러 가요!”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금세 돌아왔다. 와플 얘기할 때부터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일단 아이들의 급한 배를 채우고 야경 관람은 그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은 급격히 졸려했고 나는 곧바로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세비야 야경관람은 훗날 혁우가 숙소를 예약해 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숙박시설 고르는 팁


되도록 관광지가 밀집된 도시 중심에 위치한 것이 좋다. 싸다고 해서 도시 외곽에 숙박을 잡게 되면 교통비로 그 절약한 비용을 고스란히 날릴 수도 있다. 또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느라 귀중한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게 되어 여행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숙박시설은 그 비싼 값을 톡톡히 하기 때문에 적당히 절충하는 것이 좋은데 조금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곳이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로 환승 없이 한 번에 이동 가능한 곳이라면 고려해 봐도 좋다. 물론 그 경우에도 반드시 이동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의 경우에는 위생 및 안전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데 검색이나 숙박 후기를 꼼꼼히 살펴 치안이 불안한 지역이나 불결한 숙박시설을 걸러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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