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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12. 2018

누에보 감옥

세비야- 론다 전망대- 누에보 다리

누에보 감옥     

세비야- 론다 전망대- 누에보 다리  

   

11살 일기

오늘 무서운 감옥을 봤다. 어떻게 사람을 저런 데서 떨어뜨려 죽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 얘기로는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몸에 돌 같은 것을 매달아 강에 빠트려 죽였다고 한다. 옛날에 태어나지 않길 다행이다.  

   

9살 일기

오늘 장난감이 많은 가게를 발견했다. 하지만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빠가 구경도 못 하게 했다.  아빠는 뭐든 아빠 맘대로만 한다. 아빠가 밉다.


    



다 먹은 커피잔은 가져다 주는 것이 좋을까?


아침부터 트렁크를 끌고 버스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다행히 터미널로 가는 길은 평평한 편이어서 첫날 세비야 역에서 올 때보다는 수월하게 트렁크를 움직일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알사 버스가 거의 모든 버스 구간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세비야에서 론다로 가는 구간만큼은 노란색의 아마리오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세비야의 프라도 버스터미널

터미널 카페에서 스페인식 카페라테인 카페 콘레체를 주문해 먹었다. 여주인의 호탕한 목소리와 시원시원한 움직임이 나른한 아침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모처럼 동전을 주어 자판기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게 했다.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신 후 일어나려 하는데 커피 잔을 다시 가져다줘야 하는지 놓고 가야 하는지 헛갈렸다. 모두들 먹던 테이블에 놓고 가는 것 같아 그냥 일어서려 하다가 주인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직접 커피 잔을 가져다주었다. 여주인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대단히 고마워했다. 문화가 그렇다 하더라도 작은 배려와 친절은 어디서나 통하는 법이었다.

    

 




사막 같은 황량한 들판을 가로질러 론다 터미널에 도착했다. 론다 또한 미국 작가 헤밍웨이와 관련이 깊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본의 아니게 헤밍웨이의 자취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론다의 풍광과 투우 경기를 사랑했던 헤밍웨이는 팜플로나에 이어 이곳에도 머물며 집필을 했다고 한다. 숙소를 찾아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에서 오래된 소도시의 정취와 소박함이 전해졌다.   

   

“와 태권도다.”

    

가라테나 태극권 같은 동양 무술을 가르치는 체육관 앞에 멈춰 아이들이 포스터를 보고 있었다. 그 반가워하는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못하고 섣부른 노파심이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저건 일본의 가라테라는 무술이야.”

“태권도랑 똑같네요.”

“비슷한 점이 좀 있지.”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아이들인지라 차마 현대의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테에 일정 정도 빚을 지고 있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사실 저 무술도 정확히는 일본 무술이라기보다는 오키나와라는 섬이 중국 무술을 받아들여 만든 무술이야. 오키나와는 지금은 일본의 섬이지만 오랫동안 독립 국가였어. 무술이든 문화든 독자적으로만 발전하기는 힘들어.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가는 거야.”

     

아이들은 나의 말을 알아들었을까? 사실 내가 한 이야기는 태권도의 역사에 대한 나름의 변명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의 화제는 내 이야기와 상관없이  ‘게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리막 길에 들어선 나는 무거운 트렁크에 밀리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숙소는 비록 오래된 이성급 호텔이었지만 친절한 리셉션과 깔끔한 객실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커다란 비닐 한 봉투의 세탁비용이 4유로 밖에 하지 않은 점이었다. 그동안 매일 속옷, 양말 빨래만 간신히 하며 두꺼운 외투와 바지는 손도 못 대고 있던 내게 이곳은 빨래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파라다이스였다. 매일같이 땀에 절은 점퍼와 바지를 돌려 입다가 오랜만에 뽀송뽀송하게 건조된 옷을 입어볼 생각을 하니 마음조차 화창해지는 느낌이었다.     


먼저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론다의 지도를 챙겼다. 우선 근처에 있는 투우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투우 경기 자체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경기장 관람에는 무관심했다. 하는 수 없이 투우장 관람을 포기하고 헤밍웨이 동상을 지나 바로 전망대로 향했다. ‘미라도르 데 론다(MIRADOR DE RONDA)’라는 이름을 가진 전망대의 풍경은 탁 트인 느낌이 무척이나 시원스러웠다. 광장 한가운데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의 구슬픈 연주가 풍광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전망대 왼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니 국립호텔인 파라도르 데 론다가 나왔다. 파라도르는 스페인의 국영호텔로 시설이 좋고 서비스가 좋은 것으로 유명한데, 대부분 국왕의 별장을 개조한 까닭에 특별하고도 놀라운 전망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곳 론다의 파라도르는 특이하게도 국왕의 별장이 아니라 시청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곳과 구별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라도르


다리에 이름을 새기려다 죽은 건축가


파라도르 바로 앞에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푸엔테 누에보’가 양쪽 절벽에 긴 팔을 단단히 걸쳐 놓고 있었다. 옆의 절벽들과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자연과 함께 생성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를테면 자연으로 완벽하게 위장한 건축물 정도랄까? 18세기 말 40년 만에 이 다리를 완성시킨 건축가는 다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려다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다리에 어렵게 이름을 새겼다 한들 그걸 누가 자세히 보았을까?  때때로 인간의 집착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가는 듯하다.    

양 옆의 절벽만큼이나 시간을 먹은 듯 한 누에보 다리


방으로 오르는 길


아이들은 누에보 다리의 내부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나를 향해 매표소 직원이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들 입장료는 무료라고 말했다. 내 주머니 사정을 들킨 것 같아 살짝 무안했지만, 그의 호의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매표소를 통과한 후 다리 중앙의 아치 바로 위에 위치한 방에 들어갔다. 한때는 죄수들의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아마도 고금을 통틀어 가장 전망 좋은 감옥이 아니었을까?


놀라운 것은 필요에 따라서 사형 장소로도 쓰였다는 점이었다. 처형 방법은 간단했다. 창 바깥으로 죄수를 강제로 던지는 것이었다.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던 죄수는 그 풍경 속으로 던져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죄수의 서글픈 마음을 달래주던 아름다운 계곡의 풍경이 그의 육체를 박살 냈다고 생각하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죄수들이 방에서 보았을 계곡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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