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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14. 2018

문화일까? 무시일까?

론다- 말라가- 네르하

문화일까? 무시일까?     

론다- 말라가- 네르하 

    

11살 일기

아빠가 오랜만에 맛있는 걸 먹자고 하더니 타코벨에 데리고 갔다. 아마 아빠는 서울에서 타코벨에 같이 갔던 걸 잊어 먹은 모양이다.  아빠가 불쌍해 보여 그냥 처음 먹는 척했다.

     

9살 일기

장난감이 사고 싶다. 장난감이 사고 싶다. 장난감이 사고 싶다.

  


  

매표창구는 출발 30분 전에만 열립니다.


버스터미널의 매표창구는 닫혀있었다. 어제 미리 표를 사 두었길 다행이었다. 다른 유럽은 모르겠는데 이곳 스페인의 버스 매표소는 버스 출발 30분 전에야 매표창구를 개방한다. 그런 이유로 출발 시간에 맞춰 가지 않으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표를 살 수 있거나 혹은 표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창구가 열리지 않아 매표창구 앞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지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창구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며 항의가 들어갈 상황임에도 그들은 태평하게 잡담을 나누거나 스마트 폰을 보면서 창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선 이런 것까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정착된 것일지도 몰랐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분명 비효율적이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지만, 반대 입장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여유 있는 근무 환경일 수 있었다. 세상은 하나의 시각으로만 볼 수 없는 법이었다.  온통 효율과 경제성만을 외치는 세상 속에서 그것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그네들의 배짱만큼은 부럽기 짝이 없었다.     

버스가 오지  않는 론다 터미널

 출발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옆에 있던 중년 여성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었더니 스페인 말로 답이 왔다. 비록 말은 몰라도 그녀의 웃는 모습에서 충분히 안심하라는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버스가 도착했다. 


넓은 들판을 한참 동안 달리던 우리 버스가 마침내 해안도로에 들어섰다. 차창 너머로 검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피카소가 태어난 고향인 바닷가 도시 ‘말라가’였다. 말라가 터미널에 내린 나는 곧바로 네르하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말라가의 해변


 버스 출발시간까지 서 너 시간이나 남아 있던 터라 말라가 역으로 기차 좌석 예약을 하러 갔다.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로 바로 가는 야간 직행 노선이 공사로 인해 중지되어 버린 까닭에 그라나다에 갔다가 다시 이곳 말라가로 돌아와야 했다. 이곳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말라가에서 마드리드,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열차의 좌석을 각각 예매해야 했다. 보다 저렴한 완행열차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10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코인 라커에 트렁크를 맡길까 하다가 3유로가 아까워 트렁크를 끌고 말라가 역으로 움직였다.

    

 말라가 역은 쇼핑센터가 같이 있는 최신의 건물이었다. 기차 예약을 위해 매표창구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유레일패스를 개시함과 동시에 좌석을 예약해야 하는 것이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중간 자리의 직원이 내게 손짓을 했다. 번호표는 따로 없고 직원이 다음 고객을 직접 호명하는 방식이었다. 긴장하고 있는 나와 달리 중년의 남자 직원은 능숙하게 예약을 도와주었다. 그는 내게 웃으면서 1등석임에도 예약비가 30유로밖에 안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유레일패스를 구입하는데 거의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에게 특별히 악의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피곤했던 터라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좌석 예약권 여섯 장을 받아 들고 매표소를 나오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장 고심했던 바르셀로나 행 교통편을 무사히 해결한 까닭이었다.

    

“ 아빠 기분 좋은 일 있어요?”

“ 응. 오늘은 맥도널드 말고 맛있는 거로 먹자!”   

  

맥도널드 옆에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 타코벨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패스트푸드 음식이긴 했지만 무려 멕시코 음식이지 않은가? 다행히 아이들의 입맛에도 맞았는지 매울 텐데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문화일까? 무시일까?

  

말라가행 버스에 오르자 웬 젊은 남녀가 우리 좌석에 앉아 있었다. 자리를 착각한 모양인가 싶어 그들에게 표를 보여주며 정중히 비켜달라고 했다. 하지만 커플은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내게 그냥 다른 데 앉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것도 여기 문화인가 싶어 멀뚱멀뚱 있는데 그들 역시 그 상황이 멋쩍었는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할 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습관처럼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외국여행을 할 때 힘든 점 하나는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현지의 문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금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대부분 그 지역의 문화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수용하려고 애썼지만, 가끔씩 오늘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무례함을 당할 때면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몹시 고민이 되곤 했다.

      

버스는 관리상태가 좋지 않아 군데군데 지저분했지만 복도를 사이에 두고 좌석 하나와 두 개의 좌석으로 나뉘어 있어 공간이 여유로웠다. 덕분에 아이들은 둘이서 붙어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나는 모처럼 숙면을 취하고 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스페인 남부 휴양마을 네르하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의 네르하 해변은 사나웠다.


네르하는 겨울이 몹시 추운 독일 북부나 네덜란드 지역의 사람들이 겨울 별장으로 삼는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실제로 은퇴자로 보이는 백인 노인들이 마을 곳곳에서 보였다. 전망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동상의 모델인 알폰소 12세 국왕은 이곳을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알폰소 12세는 세비야에서 혁우에게 재워달라고 말했던 알폰소 13세 호텔의 그 알폰소 13세 국왕의 아버지이다. 간혹 알폰소 11세라고 표시해 놓은 인터넷 자료도 있으나, 근대 복식을 입은 동상을 보건대, 중세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1세가 아닌 것은 분명한 듯하다.     

알폰소 12세 국왕의 동상

 모처럼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즐길 생각을 하니 여행 내내 함께했던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들의 실없는 장난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좋은 아빠 모드로 돌아온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뿌듯했다. 부디 힘들 때도 좋은 아빠가 되기를 가만히 빌어보았다.

비 오는 오후의 네르하 광장




언어 소통 

    

유럽지역은 대부분 영어가 통하기 때문에 영어 사용에 능숙하다면 별 문제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괜히 안 되는 문법을 동원해 억지 문장을 만들려고 고생하지 말고 그냥 큰소리로 단어를 정확하게 말하는 쪽이 유용하다. 애써 문장을 만들어 말했는데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면 소통에 대한 자신감이 확 떨어져 다음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게 되는 까닭이다.


영어 사용이 능숙하지 않은 나는 구글 번역 앱을 많이 활용했다.  매끄럽지는 않지만 웬만한 단어나 문장은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번역이 되는 좋은 어플이다.  특히나 행선지와 요일, 시간을 정확하게 말해야 하는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창구에서는 번역한 후 화면을 크게 해 직원에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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