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급하게 볼 일이 생겨 아침 일찍 제주공항에 갔다. 평일 아침임에도 공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허겁지겁 인파를 뚫고 달렸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출발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도를 하며 이제 비행기를 타는가 싶었는데 전광판의 표시가 바뀌며 지연출발을 알려왔다.
허탈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하나 들어온다. 회사에서 함께 검도 동호회를 하는 형이다.
"형 어쩐 일이에요?"
"어! 넌 어쩐 일이야?"
서로 놀라서 안부를 묻는데 형의 얼굴에서 살짝 그늘이 느껴졌다.
"전 서울 집에 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오늘 갔다가 바로 오늘 내려와요."
"응. 나도 그래. 아내 병원 진료 때문에 갔다가 오늘 바로 내려올 거야."
"형수님 어디 편찮으세요?"
"응.. 암이야."
나는 잠시 당황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괘 괜찮으세요?"
"응. 다행히 초기라 수술받고 잘 치료하면 낫는데."
"아. 천만다행이네요. 근데 형수님은 어디에?"
"응. 먼저 진료받으러 올라갔어. 내가 데리고 올 거야."
"아. 네."
더 이상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깨기 위한 뻔한 말을 던졌다.
"일도 돈도 중요하지만 정말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응. 맞아. 너도 와이프 미리미리 잘 챙겨."
"예."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형과 헤어져 면세점에 들렀다. 평소 찜해 두었던 조 말론 향수를 사기 위해서였다. 향수를 사고 나오는데 멀리 아까 그 형의 모습이 보였다. 형의 옆으로 한눈에도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여자분이 힘겹게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형은 내게 형수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형의 마음을 존중해 그들을 피해 멀리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