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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18. 2023

폭우

보통의 날



서울에 급하게 볼 일이 생겨 아침 일찍 제주공항에 갔다. 평일 아침임에도 공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허겁지겁 인파를 뚫고 달렸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출발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도를 하며 이제 비행기를 타는가 싶었는데 전광판의 표시가 바뀌며 지연출발을 알려왔다.


허탈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하나 들어온다. 회사에서 함께 검도 동호회를 하는 형이다.



"형 어쩐 일이에요?"


"어! 넌 어쩐 일이야?"



서로 놀라서 안부를 묻는데 형의 얼굴에서 살짝 그늘이 느껴졌다.



"전 서울 집에 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오늘 갔다가 바로 오늘 내려와요."



"응. 나도 그래. 아내 병원 진료 때문에 갔다가 오늘 바로 내려올 거야."



"형수님 어디 편찮으세요?"



"응..  암이야."



나는 잠시 당황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괘 괜찮으세요?"



"응. 다행히 초기라 수술받고 잘 치료하면 낫는데."



"아. 천만다행이네요. 근데 형수님은 어디에?"



"응. 먼저 진료받으러 올라갔어. 내가 데리고 올 거야."



"아. 네."



더 이상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깨기 위한 뻔한 말을 던졌다.



"일도 돈도 중요하지만 정말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응. 맞아. 너도 와이프 미리미리 잘 챙겨."



"예."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형과 헤어져 면세점에 들렀다. 평소 찜해 두었던 조 말론 향수를 사기 위해서였다. 향수를 사고 나오는데 멀리 아까 그 형의 모습이 보였다. 형의 옆으로 한눈에도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여자분이 힘겹게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형은 내게 형수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형의 마음을 존중해 그들을 피해 멀리 돌아갔다.



활주로가 보이는 커다란 공항 유리창으로 장마철 폭우가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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