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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r 07. 2023

'옥상평상님이 나갔습니다.'

   단톡방에 대한 작은 생각




내게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초대된 카톡방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초등학교 단톡방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졸업한 시기가 초등학교라는 명칭이 쓰이기 이전이니 국민학교 단톡방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1995년 교육부는 일재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폐지하고 대신 '초등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선, 나는 단톡방 창의 한가운데에 '옥상평상님이 나갔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우는 것이 싫어 탈퇴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밝히는 바이다. 이 국민학교 단톡방도 강제 가입 당한 후, 나갈까 말까 우물쭈물 고민만 하고 있던 사이 벌써 반년이 지나버리고 말았다. 매일매일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에는 한번 껴보지도 못한 채 어느새 몰래 지켜만 보고 있는 관음증 환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모두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그랬던 기억도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단톡방에서는 주로 이야기하는 친구들만 계속 비슷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단톡방의 총인원은 30명 남짓 한데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은 대여섯 명 정도가 전부이다. 가끔 경조사 같은 소식이 있을 때만 열댓 명 정도가 축하 또는 조의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단톡방에 초대된 지는 벌써 반년이 넘어가는데 나는 여태껏 한 마디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이 단톡방 인원의 절반 이상이 나 같은 아이들인 것 같다. 메시지에 표시된 읽은 숫자가 1이나 2밖에 남지 않는 것을 보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절반이 넘는 친구 역시 나처럼 메시지만 읽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미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말 한마디 하는 것에도 눈치를 보고 눈치를 주면서 사소한 이야기조차 꺼내기 힘들어져 버린  소심한 어른들 말이다. 그 옛날 따뜻한 난로에 모여 앉아 차가워진 도시락을 데우며 스스럼없이 장난치며 수다를 떨던 소년과 소녀들은 이제 더 이상  세계 존재하지 않는다.




평일 낮 스키장에 놀러 간 한 친구의  사진과 메시지가 단톡방에 올라왔을 때였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그 친구는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종종 올리곤 했는데 하얀 설원과 그곳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은 낮시간 동안 한참 일하고 있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김땡땡님이 나갔습니다.'


갑자기 친구 한 명이  단톡방을 탈퇴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몇 명의 친구들이 부럽다는 댓글들을 달아주고 있던 와중에 메시지가 올라와 더욱 공교로운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무슨 생각이 들었기에 딱 이 시점에 탈퇴 버튼을 누른 걸까?'


'부럽다는 생각과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교하는 마음이 충돌하면서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친구가 올린 스키장의 사진과 자랑 섞인 메시지를 보면서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  남들이 모두 일하고 있는 평일 한낮에 마음대로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을 넘어선 일이었다. 일에서 해방되어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했고, 그 밖에도 여러 제반 사항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가족 중 누군가 아픈 상황이라도 처한다면 저렇게 편안히 놀러 다니기란 불가능한 일인 까닭이었다.


SNS, 그중에 특히 카톡의 단톡방은 정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특히,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초대되어 단톡방에 가입되는 방식이 그러하다. 어쩌다 원하지 않게 가입된 단톡방의 메시지는 아무리 알림을 꺼놓는다고 해도 읽는 순간 내 정신을 흔들어 놓는 소음이 된다.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원하지 않는 소식은 내 정신의 평화를 깨뜨리는 강력한 소음공해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방법이 있을까? 누군가 초대를 했는데 노골적으로 거절하는 것 또한 부담이 있을 수 있으니 아예 단톡방 설정에서 내게 초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설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을 사전에 내가 정해 놓고 내가 정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초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설정 범위 바깥에 있는 사람이 나를 초대하려면 내게 미리 양해를 구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거절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긴 마찬가지겠지만 지금처럼 여기저기서 초대되어 강제로 끌려다니는 상황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 나갔던 그 김땡땡 친구가 떠올랐다.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함께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순하고 조용했던 친구로 기억한다. 그저 '옥상평상님이 나갔습니다.' 란 메시지가 뜨는 것이 부담스러워 원하지도 않는 단톡방에서 반년이 넘도록 탈퇴조차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오늘 보여줬던 그의 용기와 결단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옥상평상님이 나갔습니다.'


언제쯤이면 나도 지금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고 싶은 단톡방에 저 메시지를 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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