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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05. 2023

약사님의 전화 처방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혈압약 처방을 받는다. 존경해마지 않는 아버지가 유산 대신 가족력으로 물려주신 본태성 고혈압 때문이다. 뭐 물론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마찬가지니 특별히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내가 계속 혈압약을 처방받는 약국이다. 불안한 마음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평상님이시죠?
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지난번에 처방받아가신 혈압약과 고지혈 약 중에 약효는 동일하지만  다른 회사 제품이 기계 오류로 섞여 들어가서요. 저희가 선생님 계신 곳으로 새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언제나 내게 진심 가득 친절한 얼굴로 투약 방법을 설명해 주던 약사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평상심을 찾았다.


계신 곳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아. 여기가 어디 나면요.


무심코 직장 주소를 말하려는 순간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 다른 회사 제품도 약효는 동일한 거죠? 특별히 다른 부작용도 없는 거잖아요?
아! 예.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괜히 번거로우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벌써 몇 년이나 약사님께 약을 처방받았는데 별거 아닌 일로 공연히 수고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말고 몸이 불편한 다른 어르신이 있으면 가져다주세요.
아..
약효는 동일하고 몸에도 이상 없는 거잖아요?
예 그건 확실합니다.
그럼 약사님. 이 약 다 먹고 두 달 후에 뵙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약사분과의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약을 가져다주려고 한 그에게 감사와 감동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월요일 아침, 밀려오는 전화와 업무로 안했던 마음이 마치 신경 안정제를 먹은 것마냥 편안해 이 느껴졌다. 


나는 오늘 약사님에게서 따뜻함을 처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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