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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06. 2023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

예수님이라고 달랐을까?



아내와 성당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편의점에 들러야 할 일이 있어 평소 다니지 않던 좁은 길을 지나야 했다. 멀리  불량스러워 보이는 십 대 아이들 세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옆을 우리 부부가 지나려는데 그중 아이 한 명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왔다. 나는 설마 우리에게 용건이 있을까 싶어 모른 척 아이를  지나치려 했다.  


저 내 핸드폰이 꺼져서 그러는데 핸드폰 좀 빌려주세요.


아이가 우리 앞을 막으며 대뜸 말을 건넸다. 나는 순간 당황한 체 옆에 있는 아내를 봤다. 아내의 얼굴 역시 놀라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봤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리겠다는 아이의 표정은 미안한 기색은커녕 당당함을 넘어 무례함마저 느껴졌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안 되겠는데.


나는 일부러 미안한 기색 없이 짧고 단호하게 말을 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미안해...


아내가 그런 아이를 달래기라도 하듯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이를 주시한 체 걸음을 재촉했다.


18 핸드폰 좀 빌려 달라는데 그것도 못해줘?


아이가 우리의 뒤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이 들려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이에게 검도 기술을 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제 우리 큰 길로만 다녀요.
큰길 다닌다고 이런 일이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네요.


나는 아내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이는 정말 나쁜 의도 없이 진심으로 핸드폰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너무 과하게 의심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문득 아까 성당에서 봤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예수님은 오늘의  나와 같이 행동하진 않으셨으리라는 것이었다.


성경의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말을 하셨기 때문이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


눈에는 눈,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 사상이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그 시대에 저 같은 주장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고 그만큼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어쩌면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한 예수님의 죽음은 저 말을 하는 순간 이미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수 천년이 지난 요즘,

기술은 무한히 진보했지만

여전히 의심 많고 모자라기 짝이 없

인간인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은

정말 멀고도 험난한 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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