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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05. 2024

내가 이곳 발리에 오기까지

그와 그녀와의 추억



아침부터 숙소 방 창문을 때리는 공사소음에 잠을 깼다. 하루 2만 원짜리 호텔 아니 빌라인 내 숙소 옆에는 한창 새로 짓고 있는 호텔 공사 현장이 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모두 일하기 시작하는 월요일이었다. 이곳에 와서 내게 생긴 가장 긍정적인 사건은 바로월요병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 저녁만 되면 뭔가 심장이 덜컹대며 불안했던 나였다. 승진과 더불어 업무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월요일은 언제나 내게 부담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월요일을 부담스러워했을까도 싶다. 특별히 어려운 업무가 없는 한 주간도 있었을 텐데 일요일 저녁만 되면 내 신체는 불안증세를 보이며 삐걱거렸다. 어쩌면 그것은 학창 시절부터 수 십 년 동안 반복되어 쌓인 만성적인 질병이었다.



이를테면, 그거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뇌의 인식작용은 의외로 엉터리여서 한 번 부정적인 경험을 인식한 후에는 그와 사소하게나마 닮은 현상이나 물체를 보고서도 심각한 경보음을 울린다. 그러기에 우리 뇌는 사실 관계를 파악할 생각은 않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만 놓이게 되면 본능적으로 비상경계경보를 발동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저 일요일 저녁만 되면 내 고장 난 경보장치가 습관적으로 울려왔던 것이었다.



하긴, 뭐 그렇게 조심조심해서 살아남은 선조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이 자리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테니까 일응 이해는 간다. 곰을 보고도 두려워 않고, 맹독이 있는 생선도 거침없이 먹어 댔던 터프가이 조상들은 그들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힘들었을 터였으니 말이다.



나의 월요병이 심각하게 된 데는 한 사건이 기여한 바가 컸다. 한 4년 전부터 급격히 신장과 방광 쪽으로 몸이 안 좋아졌던 나는 화장실에 좀 자주 가게 되었다. 되도록 자리 비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옆 자리 동료들은 그것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같이 일하고 있던 동료와 친했던 상사가 그 사실이 불편함을 지적해 왔다.



"팀원들 사이에 자네가 너무 자리를 자주 비운다는 이야기가 있어."



"네. 사실은 제가 최근에 몸이 안 좋아져서 화장실에 좀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어디가 좋지 않은데?"



"뭐 좀 말하기 그렇지만, 방광 계통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어? 그래. 나도 전립선이 안 좋아 같은 증세가 있긴 한데... 얼마나 자주 가는데?"



"한 시간에 십 분 정도, 어떤 때는 십 분이 넘을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이미 나와 팀원들 간의 관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그에게 이야기한 것일까? 상사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했다고 하지 말고 자신이 살펴본 결과라고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나중에 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형, 그거 그 여직원이랑 친한 ()형이 부장한테 술자리에서 이야기한 거래."



나와 옆자리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 한 명의 술자리 험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뭐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배 역시 나와 같이 일하고 있던 여자 동료와 친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당시 워낙에 몸이 불편했던 나는 그들과 다툴 심적인 여유조차 없었다. 한 번은 여자 동료가 점심시간에 술이라도 먹고 왔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팀원들 관리를 왜 그렇게 하느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따진 일이 있었다. 당황했던 나는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보다 경력도 나이도 많은 그녀의 상황을 헤아려 따로 불러 대화를 시도해 봤다.



"팀원 관리에 불만이 있다면 그 불만사항을 말씀해 주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과원들도 일하고 있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건 삼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정제된 언어로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꽉 잡은 내 주먹은 말하고 있는 내내 떨리고 있었다. 남녀가 단 둘이 별도의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까닭에 나중에 생길지도 모를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나는 녹음까지 하고 있었다.



"저는요.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할 말이 있으면 마음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할 말이 있으면 꼭 해야지 직성이 풀려요."



하하, 최소한 나는 그녀가 사과 비스름한 것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아니었다. 그녀의 말인즉슨, 자신은 불의(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불의다. )를 보면 못 참는 사람이니 팀장인 네가 알아서 기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녀에 관한 모든 퍼즐이 하나씩 맞혀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들어와 입사가 나보다 한참 선배지만 팀장이 되지 못한 그녀는 평소부터 나를 팀장 취급을 하지 않았다.



"우리 업무에 비해 팀장님 업무는 쉽잖아요."



이런 유형의 여성을 처음 만난 나였기에 처음에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무지 난감했다. 평소에는 눈웃음 짓다가도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거침없이 사람을 대한다는 소문도 들어왔기에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저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고도 했다. 사실 가장 큰 원인은 잠자는 동안에도 서 너번 씩 화장실을 가야 했던 아픈 내 몸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내 몸은 계속 피곤에 찌들어 갔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그녀를 보는 것은 그야말로 곤혹이었다.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혀를 날름 거리며 똬리를 틀고 먹이를 노려보고 있는 뱀이 떠올랐다.  



부장은 그날 그녀가 점심에 술을 먹고 들어와 내게 그런 행동을 보인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후 다행스럽게도 그들과 헤어져 다른 과로 인사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들을 보지 않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하게도 내 인사자료를 열람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부장이 내가 상담한 내용이라고 해서 적은 몇 개의 문장이 기재되어 있었다.



' 팀장의 건강상 문제로 인한 잦은 이석( 한 시간에 10분 정도 )으로 팀원들과 불화가 있었으나 각 팀원들 간의 조정과 이해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였음.'



키보드에 놓인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도대체 그는 이런 얘기를 왜 굳이 내 인사자료에까지 적어 놓은 것일까?  



본인이 이 갈등 관계를 해결했음을 알리기 위하여?



아니면 그와 친했던 그녀에게 나 이 정도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도 아니면 회사에서의 내 미래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기 위해서?


참 애쓴다 싶다가도 도무지 뭘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와의 상담사항을 적어야 할 자리에 내가 상담하지도 않은 사실을 자신의 업적처럼 기재했다는 것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너무 미웠다. 살면서 미워했던 그 누구보다 더 그가 미웠다. 하지만 회사인지라 그를 찾아가서 따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의 갑질 신고센터라는 곳에도 상담신청을 해봤다. 하지만 그 상담원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사 평정 권한을 가진 그의 입장에서 그 정도 표현을 하는 것은 갑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의 귀찮은 듯한 로봇 같은 말투가 나를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몸도 아프고 마음도 지쳤던 내게 그와 다툴 여력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그는 화장실을 자주 안 가는 사람인 모양이다 정도로 생각했다.



결국, 어디에도 분출하지 못한 그들에 대한 미움은 대놓고 따질 용기조차 없는 스스로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조차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자고 일어났더니 거대한 바퀴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처럼 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 발자국도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치 여름철 태양에 녹아내려 바닥에 들러붙은 아스팔트가 된 느낌이었다. 도무지 몸 어느 한 곳에도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회사에는 가야 했다. 내게 있어 무단결근 또는 갑작스러운 병가는 학창 시절부터 철저히 주입된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씻지도 못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아내의 걱정을 뒤로한 채 길을 나섰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마치 질퍽거리는 늪 속에 발을 디미는 느낌이 들었다. 물컹거리는 늪이 발을 옮길 때마다 잡아당겨 한 걸음 한걸음을 너무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화창한 하늘임에도 내 머리 위로는 시커먼 먹구름이 따라다니며 내게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회사 앞까지는 왔지만 도무지 회사 안으로 발걸음이 옮겨지지는 않았다. 젤리같이 녹아내린 몸을 길 한편에 놓인 벤치에 길게 눕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어떡하지...'



그동안 머릿속에만 맴돌던 죽고 싶다는 생각이 컴컴한 안개가 되어 내 을 조르고 있었다. 죽고만 싶었다.



그러다 내 눈으로 문득 한 상가의 간판이 들어왔다.



( ) 정신과였다.



나는 빨려들 듯 그곳을 향해 들어갔다.



고작 그들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았던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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