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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07. 2024

아저씨, 콘서트 보러 일본에 가기로 하다.



직장생활 20년 동안 거덜 난 몸과 마음 덕분에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이 시간 동안 건강을 회복해야 했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서만 품고 있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기로 했다. 나 혼자 떠나온 이곳 발리여행도 그 일환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나 혼자 여행을 떠난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러하듯 항상 시간에 쫓겨야만 했고 자신의 빈자리를 동료에게 맡기며 미안해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밀린 업무를 걱정하며 동료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적으로 가족의 희생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우선 내가 쉬는 동안 반에 반토막이 날 수입을 아내가 혼자서 충당해야 했고 수험 준비만으로 힘들 고2인 큰 아이는 나름 엄마를 도와 내가 없을 빈자리를 메꿔야 했다. 또한 한참 사춘기에 접어들어 수시로 감정이 폭발하던 작은 아들은 모르긴 해도 내가 있을 때만큼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내가 아는 녀석은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자신까지 짐이 되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할 테니까 말이었다.



실제로 막내는 한국에서 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기특하게도 내가 있을 때보다 그 씀씀이가 많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그러지 말고 쓰던 대로 써.'라고 카톡을 남기고 싶었지만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가 좀처럼 내 손목을 잡고 놓지 않고 있다. 나는 소심한 아빠였다.



오늘 아침 호텔 매니저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어제 이곳에 있다가 지금은 같은 체인점인 다른 호텔로 옮긴 전 매니저가 점심에 만나자고 내게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점심에 그가 나를 데리러 온다고 하는데 그는 지금 어디서 근무하는 거예요?"



"아, 짱구 해변에 있는 다른 호텔로 갔어요."



"어느 곳이 더 근무하기 어려워요?"



"그... 그건 잘 모르겠고 그쪽은 비싼 호텔이고 여기는 싼 빌라니까..."



그는 업무에 관해 손님과 자세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싼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기분이 묘했다.



분명, 나 스스로도 최대한 가성비 있는 숙소를 고른 곳이 이곳이었기에 '싸다'는 표현은 실제로도 적확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의 말이 거슬렸을까?



생각건대, 그의 싸다는 말이 그가 나를 싸구려 숙소에 머무는 싸구려 손님으로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건 아닐까?



'어쨌든 뭐 싸구려 숙소에 머무는 돈 없는 여행자면 어떠랴?  마음이 싸구려만 아니면 되는 거지.'



얼마 전 콘서트 관람을 신청한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나의 화상 영어 선생님인 루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신청한 일본 아이묭 콘서트였다.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기타 하나로 작사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 라이터였다. 이제 서른이 다 되어가는 그녀는 나로 하여금 젊은 날의 김광석을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녀는 주로 사랑과 일상에 관련한 노래를 작사 작곡해서 부르지만, '그렇게 살아왔구나.' 같은 노래에서는 한 소녀의 자살사건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태도와 네티즌들의 무신경한 댓글에 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녀의 사랑 노래는 일반적인 여자 가수의 사랑 노래와는 궤를 달리하는데 그녀의 노래에서의 화자가 그녀와 같은 성별인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사랑을 쫒는 남자의 모습이 멋있게 느껴진다며 자신은 보다 진취적인 입장에서 가사를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그녀의 노래 가사는 파격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해부순애가'라는 독특한 제목의 노래에서는 내게 사랑을 주지 않을 바에는 죽어버리라고 상대를 저주하기도 하고 네 심장을 가져다 자신의 목에 걸어 언제나 너의 감각을 느끼고 싶다고도 이야기한다.



아무튼 나이 50이 넘어 꽂힌 그녀에 관한 기사를 찾다 보니 우연히 그녀의 콘서트 소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침 내가 일본에 가 있을 시기였다. 일본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재팬 레일 패스 21일 권을 사놓기는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전혀 세워놓지 않은 상태인지라 그녀의 콘서트는 내 계획의 첫 번째 중심이 되었다.



나의 일본 여행 계획은 그 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게 되었다. 콘서트 예매를 위해 필요한 현지 스마트폰 번호를 일본에 있는 화상영어 선생님인 루스가 제공해 주었고, 브런치 명 그대로 꽃보다도 예쁘실 것 같은 '꽃보다 예쁜 그녀' 작가님이 내게 '시모다'를 비롯한 일본의 아름다운 소도시와 숙소들을 소개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이 아침, 호텔 매니저에게 가난한 숙소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들은 장기 여행자는 다시 떠날 새로운 여행에 들뜨고 있었다.



자는 곳이 좀 싸구려면 어떠한가?



먹는 것이 좀 싸구려면 어떠한가?



행색이 좀 초라하면 어떠한가?



오늘도 나는 마음의 부자를 꿈꾸며
  새로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https://youtu.be/2sqFuih7kp4?si=vlA39-Q4EBTMJk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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